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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Feb 08. 2021

디자인, 생산도시를 만나다 : AGO

로컬리콜 시리즈 토크쇼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ep.5

대림상가 동편 보행데크를 걷다 보면, 단아하고 세련된 조명들이 은은하게 빛나 눈길을 사로잡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공간의 주인은 2019년 론칭한 한국산 조명 브랜드 AGO이다. 론칭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AGO는 오랫동안 자체 디자인 조명 브랜드가 없었던 한국 조명시장에 단비와 같은 존재다. 누군가 했어야 할 일,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을 시작한 AGO의 두 기둥 이우복 대표와 유화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로컬리콜 6회에서 만났다.

 

로컬리콜 아고 편 녹화 현장 ⓒ베타시티센터

운명적 만남, BY 을지로


사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요.
상인과 디자이너의 시각이 다를 텐데,
과연 협업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이우복)

을지로에서 30여 년 조명 유통업을 해 온 이우복 대표와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유화성 디자이너가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BY을지로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BY을지로는 해외시장에서도 인정받는 한국산 조명 개발을 취지로 을지로 조명업체와 디자이너가 손을 잡고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2017년 서울디자인재단과 중구청이 ‘을지로 라이트웨이’의 일환으로 함께 기획했다.

이우복 대표와 유화성 디자이너 ©메종코리아

사실 이우복 대표와 유화성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디자이너와 상인의 시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데다, ‘카피 시장’으로 유명한 을지로 조명시장이 디자이너에게 반가운 공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한 대화의 장은 금세 서로의 마음에 있던 벽을 허물었다. 단순히 조명을 유통하는 일에서 한 단계 나아가 자신만의 제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던 이우복 대표의 열망과 한국산 디자인 조명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유화성 디자이너의 생각이 통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둘은 2017년 BY을지로 프로젝트로 탄생한 조명 ‘슬로프’에 그치지 않고, 디자인 조명 브랜드를 개발하기 위해 한 번 더 함께하게 되었다. 그렇게 AGO가 시작되었다.




뭔지 모르지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유화성 디자이너와 대화하면서 '내가 해야 될 일이 바로 이거 구나.' 하고 깨달았죠. BY을지로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많은 대화를 했고,
함께 디자인 조명 브랜드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우복)

자체 브랜드를 향한 이우복 대표님의
 순수한 열정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또 대표님께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충분히 서포트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우복 대표님과 함께 라면
 한 번쯤 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죠 (유화성)”


2017 BY 을지로 결과물 슬로프 ©인테리어디자인 코리아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 로컬 생산 네트워크


뜻을 모은 후 AGO가 출시되기까지 꼬박 2년은 말 그대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먼저 유화성 디렉터 ‘장식성과 기능성 사이의 균형’이라는 AGO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리했고, 뜻을 함께할 국내외 디자이너들을 섭외했다. 그 결과 총 6팀의 디자이너(유화성, BIG-GAME, JWDA, 김진식, John Astbury & Tove Thambert, studio word)가 AGO 컬렉션 개발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스위스, 스웨덴, 한국까지 다양한 활동무대를 가진 디자이너들이 모여 AGO만의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가 완성된 것이다.


AGO의 디자이너들 ©AGO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도 구현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프로토타입 개발, 설계, 구조화, 해석 등 AGO조명의 기술적 개발에는 AGO의 숨은 영웅인 노문근 상무가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을지로에서 평생 작업을 해 온 테크니션이다. 양산 업체를 발굴하는 일에는 이우복 대표의 열정적인 발품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해야 하는 디자인 조명의 특성을 고려하여 될 수 있는 한 국내 생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테일한 금형 제작에 여러 업체에서 생산을 고사하기를 여러 번이었지만, 이우복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로컬 생산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보통 브랜드들은 자체 시설이 있고,
가장 잘 다루는 재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죠.
AGO의 경우 조금 다른 생산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체 시설이 없는 대신 로컬 생산 네트워크를 이용하기 때문에 목재, 철재,
유리 등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한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거죠(유화성)

유화성 디렉터의 말처럼 AGO만의 로컬 생산 네트워크는 단순한 생산기반이 아니다. 재료나 공정에 구애받지 않고 디자이너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AGO의 크리에이티비티는 유화성 디렉터가 구축해온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와 이우복 대표가 마련해 온 국내 생산 기반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숨 가빴던 2년의 성과, AGO lighting


2년 동안 8개의 컬렉션을 개발하는 일정은 ‘미쳤다’고
느껴질 만큼 다이내믹했어요.
그래도 반응이 좋으니 보람이 있습니다.
(유화성)

숨 가쁘게 달려온 AGO의 8개의 컬렉션이 모습을 드러낸 건 2019년 9월 파리 메종&오브제에서였다. 다행히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AGO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조명은 디자인 자체 만으로도 해외시장의 눈길을 끌었지만, ‘한국 브랜드’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카피 시장 이미지가 강했던 한국에서, 높은 수준의 독자적 디자인 조명이 나왔다는 사실에 ‘한국에는 이런 브랜드가 없었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는 감탄이 쏟아졌다. 덕분에 타겟이었던 유럽시장에서 목표했던 파트너 계약, 판매 계약 등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AGO의 8가지 컬렉션 ©AGO


국내에서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공식적인 론칭은 늦어지고 있다. 2020년 3월 디자인 리빙페어를 통해 국내에서 브랜드를 정식으로 론칭할 계획이었으나, 불가피하게 미뤄지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페어라는 공식적인 자리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디자인 제품 관련 언론사에서 AGO에 관심을 가지고 홍보해주고 있어 조금씩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또 대부분의 생산을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었기에 코로나로 인한 생산 타격도 적은 편이다.


제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알았으면 다시 못했을 시간이었습니다.
AGO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앞으로
10년, 20년 지나며 한국의 대표적인 조명 브랜드로 언급된다면 좋겠습니다
(이우복)
 

사실 조명 유통만 30여 년 해 온 이우복 대표에게나, 스톡홀름에서 독립 디자이너 스튜디오를 운영해 온 유화성 디렉터에게나 ‘국내산 디자인 조명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큰 도전이었다. 몸으로 부딪혀 온 시간의 결실로 탄생한 AGO lighting이 이들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토크쇼 말미에 이우복 대표와 유화성 디렉터는 AGO가 10년 후 한국의 대표적인 조명 브랜드로 거론되고, 한국 조명업계에 작은 변화에 기여했으면 하는 소망을 밝혔다.  



생산지로서 을지로의 한계와 가능성


AGO의 개발 과정은 생산지로서 을지로의 현재를 확인하는 뼈 아픈 시간이기도 했다. 탱크도 만든다던 청계천 을지로에서 30여 년 업을 이어온 이우복 대표였기에 시작 단계에는 기대가 컸다. 확실히 을지로에는 내공이 뛰어난 숨은 기술자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장비, 시설의 노후화 등 작업 환경이 열악했기에 양산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AGO의 컬렉션 중 조명 ALLEY의 전등갓을 만드는 시보리 공정 외에는 다른 지역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지로는 여전히 제작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빠르게 재료를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시간에 원하는 작업물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AGO 제품의 프로토타입 제작은 많은 부분 을지로에서 이루어졌다. 도심 한가운데, 곧 소비시장의 접근성이 높은 을지로에 위치를 고려한다면 이처럼 ‘빠른 제작’이 가능한 환경은 여전히 큰 메리트이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고, 작업 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여전히 을지로에 가능성 혹은 잠재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토크쇼 5회 AGO편 다시보기

https://youtu.be/-RVAiRoYCUQ

* 포럼 웹사이트

https://forum.betacity.center/

*AGO 공식 홈페이지

https://agolighting.com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6회(최종회)에서는 젊은 리페어 서비스 배터리뉴를 운영하는 인라이튼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는 12월 21일 세운베타시티센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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