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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Feb 08. 2021

날 것의 재료로 특별함을 완성하다, rareraw

로컬리콜 시리즈 토크쇼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ep.4

여의도 글래드 호텔, 이태원 현대카드 바이닐 앤 플라스틱, 아리따움 명동 중앙점.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핫플레이스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셋 모두 국내 최초 철재가구 전문 브랜드 레어로우의 깔끔하고 세련된 철재가구로 완성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레어로우는 인스타그램에 자주 태그 되는 핫한 ‘시스템 선반 000’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물론 인테리어 고수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는 드문 가구 브랜드 레어로우의 양윤선 대표를 로컬리콜 5회에서 만났다.



여정의 시작: 불 같은 사명감

 

철을 자르고, 접으며 제작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이 너무 멋있었어요.
기계들은 물론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도 너무 멋있었죠.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과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
뭐 그런 불 같은 사명감? 을 느끼게 된 거죠

   

을지로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에 이어, 양윤선 대표의 아버지는 금속으로 기업 매장용 진열대를 만드는 철재 가구 회사 ‘심플라인’을 창업했다. 미국에서 공간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연히 아버지의 공장을 놀러 간 양윤선 대표는 그만 현장의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그의 눈에 철을 자르고, 접는 작업도, 철을 다루는 기계까지도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이 분들과 함께 뭔가 해내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심플라인 재직 당시 현장근무 중인 양윤선 대표 ⓒ양윤선

일에 몰두하며 회사의 중국 진출까지 도왔던 양윤선 대표는 공장에서 들이는 엄청난 노력들이 현장에서 저평가되는 현실 앞에 많은 눈물을 쏟았다. 디자이너로서 뭔가 다른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후, 논현동 심플라인 매장 위에 ‘레어로우’라는 간판을 하나 더 달았다. 그것이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작은 혁신을 찾아온 기회

 

양윤선 대표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주 작은 변화였다. 먼저 다보, 앵글, 찬넬, 브라켓 등 그에게 있어 ‘예쁘고 소중한’ 부자재들이 제 값을 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소중하게 포장했다. 또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세련된 컬러로 칠도 새로 했다. 이 작은 혁신은 금방 고수의 눈에 띄었다. 2014년 첫 클라이언트였던 JOH 디자인은 여의도 글래드 호텔의 300여 개의 철재 시스템 선반을 레어로우에게 맡겼다.


레어로우 초기 사무실 ⓒ양윤선


그때는 막 시작할 때라, 프로젝트 규모,
비용 묻지도 않고 ‘네, 할게요!’ 그랬어요.
이렇게 큰 프로젝트였던 줄 몰랐던 거죠.
첫 프로젝트를 잘 만나서 이후에
재밌는 프로젝트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이 첫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인천 제2국제 공항을 설계한 미국의 갠슬러와 현대카드의 스튜디오 블랙, 바이닐앤 플라스틱, 쿠킹 스튜디오 등 다양한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이후 아리따움, 29cm, 사운드 한남, 라인 매장 등 굵직한 기업과 계속해서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됐다.  


레어로우에서 맡았던 공간 프로젝트들(왼쪽 위부터 글래드 호텔, 바이닐 앤 플라스틱, 쿠킹스튜디오, 사운드 한남) ⓒ레어로우

생산과 소비, 간극을 좁히기 위한 분투

 

기업 프로젝트로 인지도가 높아진 레어로우는 본격적으로 B2C 가구라인을 늘려갔다. 셀프 인테리어 열풍과 함께 집에 신경 쓰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흐름을 타고 B2C 매출은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소비자들과 접점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고민도 늘었다. 품질관리의 중요성이 훨씬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모기업 심플라인의 탄탄한 생산 인프라는 레어로우의 강점이자 숙제였다. 30여 년 B2B 맞춤 생산을 해온 기술자들에게 B2C 기준을 납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매장에 납품했을 때라면 용인되었던 3mm의 흠집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2019년 레어로우의 포퍼니쳐 가구라인 ⓒ레어로우
99.9% 정상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으시기 때문에
제가 불량이라고 말씀드리면 자괴감이 든다고들 하셔요.
이 과정이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길게 보면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름 달고 해외 나가려면
3mm가 아니라, 1mm도 안 되죠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레어로우의 요구사항을 최우선으로 맞추기 위해 정교한 기술과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결과적으로 공장 전반의 제조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높은 품질의 100%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당당히 해외 시장을 사로잡는 것이 양윤선 대표의 목표라고.  



철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 스틸 얼라이브


레어로우의 대표 아이템인 시스템 선반을 필두로 인테리어 고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소비자들을 향한 레어로우의 열정은 이미 통하고 있다. SNS에 ‘드디어 레어로우 설치~’와 같은 내용의 게시물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할 정도.

인스타그램에 인증된 레어로우의 가구들 ⓒ레어로우


일반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레어로우가 가장 많이 받게 된 질문은 “그런데 왜 철이에요?”였다. 양윤선 대표는 나무가 많은 북유럽에서 목재가구가 많은 게 당연한 것처럼,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우리나라에서 철재가구를 만드는 게 자연스럽다고 설명한다.   


그의 타당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철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레어로우에게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목재 가구에 더 익숙한 소비자들이 차가운 철의 속성 자체를 낯설어했기 때문이다. 때로 얇은 철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녹이 슬지는 않는지 등 우려 섞인 질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런 목소리들은 금속 전문 메이킹 스페이스 스틸 얼라이브를 만드는 발단이 됐다. 크게 금속과 철을 이용한 다양한 마감재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머트리얼 라이브러리와 전문장비들을 이용해 제작을 할 수 있는 메이킹 스페이스로 나누어져 있는 스틸 얼라이브는 ‘재료를 직접 다루어 볼 때 재료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공간이다. 1층에는 레어로우의 가구들을 만나볼 수 있는 쇼룸도 준비되어 있다.


스틸얼라이브 ⓒ레어로우

제작환경 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제조혁신


디자인만 한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그다음 스텝, 만드는 과정을 잘 해내야
디자인이 비로소 완성된다고 볼 수 있죠.
 잘 만들기 위해서 생산현장에 젊은 인력이 절실해요.
숙련 기술자 분들의 노하우도 전수받고,
젊은 감각도 이해해야 하니까요.
그러자면 제조산업 전반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레어로우의 최대 강점은 역시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을 곧바로 생산해낼 수 있는 브랜드라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런 레어로우의 강점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양윤선 대표의 말처럼 생산현장에 젊은 인력의 투입이 절실하다. 그러자면 저평가된 생산노동에 대한 재평가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너무 낮은 인건비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드는 경험’에서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생산현장에 젊은 인력의 유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는. 디자인 가구의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기꺼이 감당하는 소비시장이 확대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제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핵심도 사실 이 지점에 있다. 소비자들의 세분화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교한 생산체계를 갖추는 혁신을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도심을 무대로 한 만드는 문화의 확산은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들을 위한 가구를 생산하는 동시에 도심에서 메이커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레어로우가 판매하는 것은 어쩌면 가구 이상일지 모른다.


젊고 즐거운 기업 레어로우의 양윤선 대표와 직원들 ⓒ레어로우


* 포럼 웹사이트

https://forum.betacity.center/

* 레어로우 공식 홈페이지

https://rareraw.com/





 <신제조업의 영민한 루키들> 5회에서는 국내 디자인 조명 브랜드 AGO를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는 11월 11일 세운베타시티센터 유튜브 채널에서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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