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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셀로나 Jan 27. 2022

Vermut 베르무트

스페인 술 읽어주는 여자



 문화로 읽어 보는 스페인
  번째 이야기는 베르무트입니다.



베르무트의 시작은?

베르뭇 또는 베르무트라고 불리는 이 술은 유럽의 술 문화에 한자리를 크게 하고 있는 주종이다. 이태리에서 시작된 주류로 캄파리, 마티니 그리고 신자노 같은 브랜드가 유명하다. 스페인에서도 이 역사는 길고 넓게 자리 잡았다. 베르뭇이 처음 스페인에 도착한 것은 19세기 말 1860년 이탈리아의 페루치(Perucchi)라는 사람에 의해서이다. 그는 자신의 레시피로 바르셀로나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이것이 스페인의 베르뭇 첫 기원이라 한다. 특히 이탈리아의 이주민들이 많이 정착해 살았다고 하는 카탈로니아의 타로고나주, 소도시인 Reus에서 베르뭇이 만들어지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고유의 브랜드로 만들어졌다는 최초의 베르무트 Yzaguirre(1884)가 있다.







어떻게 마시는 거야?

그래서인지 카탈루냐 지역에서 특히 베르뭇을 많이 즐기는데 (물론 스페인 전체, 유럽 전역에서 다 많이 즐긴다.) 주말 오전이면 약속이나 한 듯 베르뭇 하러 가자 하며 동네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내겐 주말을 시작하는 술 같은 느낌이다. 식전주로 주로 마시는 술이기 때문에 식사를 하기 전에 베르뭇을 파는 bar인 Vermuteria에 모여 수다를 떨면서 한잔 정도 마시는 게 보통 문화이다. 잔에 얼음을 넣고 베르뭇을 따르고 가니시로 오렌지와 올리브를 넣어 마시는 게 전통이다.





베르뭇 TMI 썰

처음 유럽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식전주 문화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인이었다. (삼계탕 집에서 주는 인삼주 정도가 내 인생 식전주의 전부였다.) 이 문화 참 낯설다. 그래서 얽힌 웃픈 일화가 있다. 바셀 생활 초창기에 잠시 썸을 탔던 스페인 남자와의 이야기.


초반에 경계심이 많은 편인 성격인 나는 빈속에 술을 먹이는 그가 의심스러웠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식전주를 시키는 문화가 아닌 베르뭇떼리아에서 한 잔을 하고 밥을 먹으러 이동하는 식이다. 이 순서를 알턱이 없었던 나는 오해할 만했다. 빈속에 왜 술을 먼저 먹는지 아니 왜 술만 먹이는지 그 자리가 아주 불편했다. (내 머릿속 "어쭈 너 지금 대놓고 나 취하게 하려는 속셈이냐?") 그렇게 쌓인 오해는 저녁을 먹으러 가지 않는 결정을 하게 만들었고 이 상황을 이해할 턱이 없는 그는 갑자기 바람을 맞는 상황이 되었다.(미안ㅋㅋ 내가 좀 극단적이었네..;;) 그렇게 오해를 안은 채 며칠이 지났고 그렇게 내가 가버린 게 못내 찝찝했던 그가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솔직하게 말을 했고 그는 웃었다. 아주 크고 오랫동안 하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나는 오해와 민망함으로 베르뭇의 세계에 입문했다.





어떻게 만들어지는 술이야?

베르뭇은 허브, 나무껍질, 야생 꽃, 향신료, 과일 등 갖가지 많은 재료들(40여 가지)의 추출물로 만들어진다. 이 추출물은 2주 동안 하루에 2번 회전하는 용기인 Tamburo에서 알코올과 함께 혼합된다. 혼합된 용액은 와인과 설탕을 첨가해 마무리된다. 달달하게 마시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레드 베르뭇은 이태리 스타일이고 드라이하게 즐기는 화이트 베르뭇은 프랑스식이다.


                                                                @huffingtonpost.es



뭐랑 같이 마셔?

술을 마실 때 마리아주가 아주 중요한 일인으로써 짚어 주어야 할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술을 마실 때 안주가 거의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권에서는 그렇지 않다. 서양의 바에서는 안주 없이 술만 마시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베르뭇도 식전에 마시는 술이다 보니 보통 안주 없이 이것만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곁들이고 싶다면 올리브나 절인 정어리 등 새콤함에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것들과 궁합이 잘 맞다.



물론 스탠더드가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술 문화에 수학처럼 딱 정해진 정답은 없듯 본인의 입에 잘 맞는다면 그것이 정답. 식전주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아닌 타파스 여러 개 시켜서 끼니를 대신하고 싶은 경우에도 베르뭇과 함께하면 잘 어울린다. 짭짤한 엠부띠도스, 치즈와도 좋은 궁합이다. 당도와 알코올이 꽤 높은 편인 술이다 보니 보통 2잔 이상은 잘 마시지 않는다. 술술~ 넘어가는 술이라기보다는 홀짝홀짝 마시는 술 너낌.




내가 스페인 술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유?

나는 술 문화에 대해 굳이 글도 쓰고 공부도 한다. 하나의 새로운 언어라 생각하는 와인 공부를 본격 시작하면서 더 관심이 많아 졌다. 외국에서 삶을 택한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다름을 흥미로워한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외국 살이를 하면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나라마다 즐겨 마시는 주종과 방식을 잘 들여다보면 그들의 문화와 환경이 스며들어 있다. 예로 와인을 마시는 나라와 위스키를 마시는 나라를 떠올려 보자. 그들이 가진 자연환경, 날씨 그리고 삶의 방식을 한번 그려보라. 나는 와인 생산국을 떠올려보면, 온화한 날씨와 포도나무를 키울 수 있는 최적화된 좋은 자연환경. 그리고 가족과의 여유로운 저녁 식사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위스키를 떠올려보면 추운 겨울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도시의 모습이 그려진다.


물론 모든 걸 일반화하기에는 무리수가 있지만 두루뭉술 크게 보면 특징이 있다. 그 이미지가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에도 반영된다고 믿는다. 이유는 내가 스페인에서 살면서 나도 모르게 스페인스럽게 바껴진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환경에서부터 오는 사람들의 특징을 읽는 것, 얽힌 히스토리를 거슬러 찾아 올라가 보는 것이 재미있다.


또 하나. 외국 살이를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언어의 장벽에 종종 부딪치게 된다. 그들의 문화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 친구에게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법.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함께 홀짝이고 있는 술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라면? 인간관계에서 높아 보이는 장벽에 다른 길을 만들어주는 브릿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 생활 가까이에서 재미를 주는 요소 찾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에 흥미를 주면 일상에 에너지가 더 생기고 궁금증이 많아지는 법이니까. 마시기만 하는 술 이상 스토리에 관심을 주기 시작한 순간부터 더 이상 그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다. 스토리를 알고 마시는 한 모금은 더 특별하고 그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나는 요렇게 술 공부(?)에 진심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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