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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Oct 29. 2020

악마를 보았다 - 익숙한 악마의 얼굴


누군가는 '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한 표현에만 천착할 뿐 그 이상의 성찰은 없는 영화라고 지적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두 눈을 제대로 뜨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영화를 옹호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두 번 보기 어려운 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악마를 보았다'의 어떤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를 비롯해(거의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이 영화에 이르러 비로소 배우 이병헌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몇몇 시퀀스들은 설정 자체로 악마성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 곧 '악마를 보았다'는 경험인 셈이고,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 그 자체로 악마로 군림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악마를 보았다'는 관객을 질색하게 만드는 그 표현들로 악마성에 대한 고찰을 완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참을 수 없는 잔인함이 계속 화면으로 소환될 때마다 관객은 '공포'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악마를 맞닥뜨리는 것과 내 안의 악마를 마주하는 경험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악마는 바깥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내 안에서 은밀히 자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악마는 보았다'는 극단과 과잉의 화법으로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동시에, 이를 관객도 몸소 체험케 한다. 


어두운 이면에서 마주한 악마의 얼굴, 영화는 그것이 비뚤어진 욕망과 광기에 사로잡힌 악인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저 무표정한 나의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과거형의 문장이다. 그리고 독백에 가깝다. 영화 속의 끔찍한 장면이 상기될 때마다 우리는 내 안의 악마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장경철도 될 수 있고, 김수현도 될 수 있다. 


박훈정 작가는 연쇄살인범 검거를 다룬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고 시나리오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댓글들이야말로 잔인한 청소년 관람불가인데, 적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통쾌해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한 지 10년. 그 사이 사회는 더 끔찍하고 잔인해졌다. 수많은 사건사고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의 증오와 혐오 담론들은, 이 사회가 악행과 분노를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악마를 보고 있다. 그들은 매번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날 뿐 서로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중에는 정말 익숙한 얼굴도 하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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