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Guard, 2020
'올드 가드'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액션 시퀀스를 보여주는 장르 조합물이다. '불멸의 존재'라는 설정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는다면, 액션과 슈퍼히어로 장르를 적당히 섞은 결과물을 그럭저럭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나 주제의식을 찾는다면, 얄팍한 서사에 금방 질리고 말 것이다. 새로운 차세대 서사인 척을 하지만, '올드 가드'는 제목 그대로 매우 '올드한' 액션 영화일 뿐이다.
'올드 가드'는 흥미로운 설정과 세계관에 비해 이야기 전개가 단조롭다. 불사의 몸을 갖고 역사를 바꾸는 인물들이라는 설정을 충분히 살린 것인지 의문이 든다. 1986년 작 '하이랜더'와 같은 유사 영화들과 비교해, 영생이란 주제에 대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권태나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 존재로서의 좌절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아예 역사의 변곡점마다 개입해 변화를 이끄는 일종의 비밀결사대 역할을 하는데, 이들의 사명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충분치 않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수많은 배경 역사에 비해 영화의 전체 스토리가 지나치게 얇다는 인상을 준다. 강약 조절도 원활하지 않은 편이다. 영화 속 비장한 감정을 만드는 건 캐릭터들의 비장한 사연이 아니라, 이유 없이 비장한 표정과 음악이다. 뜬금없이 과한 음악 사용은 정말 좀 지나치다. 뭔가 부족하다 싶을 때마다 음악이 끼어들어 생각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PC 요소는 다소 작위적이지만 반감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 다만 '올드 가드'를 성공한 여성 서사로 보기는 어렵다. 여성 리더, 유색인종 여성, 게이 커플이 전형적인 남성 히어로 서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이들의 처절한 전투들은 마치 역사의 물꼬를 바꿔온 순교자의 모습처럼 포장되지만, 티 나게 합성한 흔적이 역력한 과거 사진 몇 장만으로 이들의 행보가 역사적인 것이 된다거나, 이 영화의 서사가 대서사시로 둔갑하진 않는다. 소수자로 취급되었던 이들에 의해 인류의 역사가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얘기하려는 것이라 보기에도, 뒷받침할 만한 전사(前史)가 부족하다.
'올드 가드'의 PC 요소는 단순한 트렌드 수준으로 폄하될 소지가 다분하다. 여성 서사는 그리 간단히 완성되지 않는다. 앤디(샤를리즈 테론 扮)와 나일(키키 레인 扮)이라는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저 성별이 대체된 것일 뿐 그들의 캐릭터와 관계 어디에서도 진일보한 여성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남성 주인공이 주로 해왔던 일을 여성이 수행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바뀌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 서사의 답습에만 그친다면 존재 가치가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남성 중심 서사의 문제는 주인공이 남성인 게 아니라 가부장 사회의 규범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강요된다는 것이다. 여성 서사는 이에 대한 전복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나 샤를리즈 테론의 매력만은 단연 돋보인다. 꼭 제작까지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녀가 아니면 만들 수 없었던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아토믹 블론드' 같은 영화보다는 잘 어울리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는 이 영화에 부재한 여성 서사가 마치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까지 유발한다.
과연 의도한 대로 '올드 가드'는 속편까지 내는 데 성공할까? 속편을 암시하는 내용이 억지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흥미롭지도 않다. 영생을 누릴 프랜차이즈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흥미로운 세계관에 샤를리즈 테론의 카리스마라면 캐릭터 중심의 시리즈가 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