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seo Nov 24. 2020

남산의 부장들 - 범죄 누아르를 닮은 현대사


'남산의 부장들'은 당대 최고의 연기자들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장면을 재현한다. 자칫 어설픈 재연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역사를 되짚는 것 이상의 성취를 이루어낸 것으로 보인다. '남산의 부장들'은 모두가 아는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간과했을지 모르는 개인의 욕망을 포착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건져 올린다. 



과연 그는 왜 그랬을까. 영화의 최대 관심사는 국가 최고 권력이자 자신의 주군에게 총을 겨눈 그의 속 사정에 초점을 맞춘다. 워낙 실화 자체가 드라마틱하긴 해도 캐릭터들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해 드라마로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의 기록은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다. 특히 역사 속 개인의 생각과 감정은 철저히 누락되고 만다. 사람들은 증언과 기록을 통해 그 사람들의 심정과 동기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실제 인물은 종종, 아니 생각보다 자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역사는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우연들이 빚어낸 산물인지도 모른다. 


'남산의 부장들'은 기승전결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련의 사건들을 40일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압축한다. 그사이에 각하를 둘러싼 부장들 간에는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가 생긴다. 영화는 그 이유에서 한국사의 불가피한 흐름을 짚어낸다.



우민호 감독이 그리 좋은 작가나 연출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힘 있는 스토리텔러라는 사실이다. 그는 '내부자들', '마약왕'을 지나 '남산의 부장들'까지 욕망 3부작이라 스스로 소개하는 일련의 작품들에서 과한 야심을 보이진 않는다. 현대사에서 어떤 부조리를 짚어내고 깊이 있게 탐구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권력자들의 타락과 몰락 과정을 통해 권력을 둘러싼 개인의 욕망 세계를 다루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한다. 


감독이 장르 영화의 문법을 통해 던진 '과연 그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건 바로 '배우의 얼굴'이다. 이인자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수컷들의 권력 다툼은 명배우들의 얼굴로 표현된다. 권력자로서의 모습 이면에 드러나는 일그러진 얼굴은 실화에서 구멍 나 있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메우는 재료이자 장르 영화의 핵심 도구가 된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남자들은 사실 지극히 감정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말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독재자를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던 김규평(이병헌 扮)은 그 권력자가 등을 돌리자 그제야 자신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의 각성은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정의로운 행동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릇된 신념 끝에 내린 그릇된 판단이 된다. 그의 심판이 역사의 물꼬를 돌릴 수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 역사는 그들의 시체를 넘어 그대로 흘러갔을 따름이다. 


벌레 같은 경쟁자에게 치이는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던 것인지,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지 않는 지도자로 인한 나라 꼴에 분노했던 것인지, 그의 사정을 모두 헤아릴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었을지언정, 그리 정치적으로 계산되지도, 대국적인 시각에서 설계되지도 않은 쿠데타였다는 점이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린 김규평은 전임자의 최후가 그랬듯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최후를 맞는다. 누군가는 총탄에 속절없이 쓰러지고, 누군가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마지막을 맞는 것이 이 남자들의 결말이었던 셈이다. 신발(Shoes)은 누군가의 포지션, 입장, 처지를 의미하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철저히 개인이었던 그들은 역설적으로 개인의 입장이나 처지가 무의미한 결말에 이른다. 신발 없이는 설 수 없듯이, 명분이나 설 곳조차 사라진 곳에서 퇴장하게 되는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흡사 누아르의 주인공들 같다. 영화는 이들의 얼굴을 극단적인 콘트라스트로 부각하며 누아르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말하자면,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에서 빌려온 내러티브에 배우들의 연기를 더해 완성한 누아르인 셈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해서 '남산의 부장들'이 곧 '정치 누아르'가 되진 않는다. 그것은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개인'에 집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역사가 '정치'의 맥락보다는 '범죄'의 맥락에 가까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치 누아르'가 돼야 했을 이야기가 '갱스터 누아르'가 되고 말았다는 것. 그게 곧 이 나라의 현대사라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드 가드 - 여성 서사에 대한 착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