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는 반일 감정을 불쏘시개 삼아 계속 불을 댕긴다. 하지만 불이 타오르기는커녕 좀처럼 불꽃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자체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배우가 강한 톤의 연기를 선보이지만, 캐릭터 구축은 약하고 허술하다. 액션 시퀀스는 편집 등이 잘 짜여 있지만, 예측 가능한 장면이 대부분이고 그 자체로 인상적인 장면은 부족하다. 카메라는 유려하게 움직이지만, 인물들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도, 기막히게 멋진 액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비교적 훌륭한 연기, 액션, 카메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는 대신 감정적인 자극을 추구한다. 거의 모든 장면이 상대가 얼마나 나쁘고, 우리가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데 소모된다. 이 '불 피우기'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목숨을 건 독립군의 항거가 의미 있게 담기려면 캐릭터가 구축되어야 마땅하고, 캐릭터가 구축되려면 적절한 사연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인물들의 이야기는 플래시백 몇 장면으로 손쉽게 대체된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왜 일본을 증오하게 됐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만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 인물들이 거사를 도모하든, 처절한 사투를 벌이든, 결국에는 승리하든, 남는 것은 결국 이를 악문 증오뿐이다.
상대를 지나치게 악마적인 존재로 설정한 것도 문제다. 일본군의 가학적인 만행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지배/피지배의 역사는 잔인한 폭력 이미지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다. (어린 일본 병사 캐릭터 역시 일방적인 선악 구도를 무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것으로 보여 작위적이었다)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올바르지 못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게 오래 지나지 않은 사건이고 피해 당사자가 볼 수 있다고 가정하면, 과연 피해 상황을 이렇게 자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었을까? 지나간 역사라고 해서 감정적 선동의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투 시퀀스 역시 공들여 찍은 티는 나지만 잘 짜여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역동적인 카메라에 비해 액션 설계의 의외성이 부족했다. 이 정도 규모의 전투를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세부 전략 및 전술에서 한방이 있어야 했지만 '봉오동 전투'의 액션은 전반적으로 평이하다. 오합지졸 독립군이 어떻게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김한민 감독이 '봉오동 전투'를 차기작으로 맡는 것으로 거론되다 제작과 각색만 참여하였는데, 전투 시퀀스만 보았을 때 그의 전작 '최종병기 활', '명량'보다도 부족한 면이 보인다)
평범한 민초들의 힘이 모여 승리한 전투를 통해 '잊힌 영웅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결국은 '한 영웅'의 서사로 귀결되고 만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 '봉오동 전투'는 작게는 이 전투, 크게는 이 항거가 왜 벌어졌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독립군의 역사를 '상대가 때려서 나도 때렸다'는 식으로 압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스크린에 담고자 했다면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어야 했다. 물론 복수심은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독립군이 복수를 위해 결성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봉오동 전투'는 역사 속 사건을 가능한 자극적으로 해석해 분노와 해소(혹은 배설)의 과정을 대리 경험 시켜 주는 것으로 존재 가치를 다한다. 이런 이야기로 누군가의 감정이 해소됐다면 그것으로도 의미는 있는 것이겠지만(개인적으로는 딱히 후련하지 않았다), 역사 속의 중요한 한 장면을 이렇게 얕은 수준으로 기억하고 감정 해소에 활용하고 만다는 것은 오히려 서글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과거사에 대해 취해야 할 자세는 이것보다는 좀 더 성숙해야 마땅하다. 이 영화가 담은 이야기가 과연 승리의 역사일까? 오히려 패배를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역사가 아닐까?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나라에 산다는 건 오히려 또 다른 비극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