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무사히 버텼다고 마음 내려놓는 날을 두고, 왜 나아가지 못하였냐고 나무라는 날이 있습니다.
일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아무리 쳐내어도 업무 요청 메일은 계속 쌓이기만 하고, 유난히 저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 메신저가 쉬지 않고 울렸습니다. 몇 날 며칠간 퇴근도 포기하면서 준비해왔던 기획서는 물거품이 되었고, 무엇 하나 진도가 나가는 일도 없고, 유관부서 직원과 날 선 말들로 감정 소모까지 했습니다. 내가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내던져버리는 하루였습니다.
퇴근길. 잘 버텼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만하면 잘 넘어갔다고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난 일기장 속 연초 다짐의 말들이 나를 다그쳤습니다.
나의 19년. 나의 한 해 목표가, 열정이, 그리고 그것을 위한 계획들이 나를 나무랍니다. 왜 나아가지 못했냐고. 오늘 하루도 왜 그 자리에 머물렀냐고.
이렇게 그저 무사히 버텼다고 마음 내려놓는 나를 두고, 왜 나아가지 못하였냐고 나무라는 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