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마케팅이라는 업무를 하면서도 감정소모가 극심할 때가 있습니다. 고객 컴플레인.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엔 그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바닥 친 자존감은 되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고, 이 위기가 내 인생을 끝내버릴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순간이 지나가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나면 알게 됩니다.
’이 일은 분명 큰 일이야. 하지만 어떻게든 지나갈테고 이걸로 내 인생이 끝나지는 않아.’
꿈꾸던 일을 하게 되었다는 설렘과 신입사원 특유의 열정만으로 고객 대상 소셜 이벤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컨테스트 1등 팀에게 경품을 주는 이벤트였어요.
즐거운 분위기 속에 이벤트는 종료되었으나, 당첨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논리로 경품을 요구하는 고객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고객센터 담당님께서 응대를 해보려 했지만 막무가내였고, 결국 바통은 담당자인 저에게로 넘어왔습니다.
그 당시 저는 유관부서에 보내는 메일 하나조차도 선임의 컨펌을 받고 보내야 하는, 완전 생 초짜 신입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정만은 넘쳤기에 아무 준비 없이 호기롭게 전화를 넘겨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짜고짜 "너는 뭐냐, 신입이 뭘 안다고 이러냐, 책임자 바꿔라." 내용은 없고 화만 가득한 고성이 수화기 넘어 들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케팅팀입니다”라는 인사말도 꺼내기 전에,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왜 소리를 지르세요?”라고 같이 화를 냈습니다. 멘탈 초짜 신입사원의 고성은 어버버 공중을 떠돌다가 결국 울음 섞인 목소리로 변했고, 네 저는 결국 울어버렸습니다.
보다 못한 선임이 전화를 넘겨받으며 상황은 해결되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며 처음 울었던 날입니다. 회사에서 눈물을 흘리는 상황은 취업준비 시절 정주행 했던 '미생' 같은 드라마에만 나오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몸무게의 2.5배 무게의 박스를 나르다 근저족막염이 와도, 과로를 악바리 정신으로 버티다 내출혈이 생겨 응급실에 가면서도 울지 않던 저입니다. 하지만 몸이 아닌 멘탈에 타격이 온 건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자면 이후 겪어야 했던 일들에 비해 정말 작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앞으로 내가 고객을 대하는 B2C 마케팅을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 정도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대 고객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작은 규모의 소셜 이벤트는 물론, 구매고객 대상 이벤트, RSVP 파티, 서포터즈 면접 및 정기모임, 브랜드 모델 사인회 등 정확한 횟수는 모르겠지만 세 자릿수는 확실히 넘습니다.
컴플레인을 사전에 방지하는 노하우가 생겨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사실 방지하고자 기를 쓰고 노력합니다만), 여전히 논리와 예의로는 해결되지 않는 건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의 컴플레인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고민합니다. 물론 고객의 입장에 최대한 공감하려는 태도는 잃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고객과 대면하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하게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은 늘 찾아옵니다. 이번 건 역대급이다. 이게 맥시멈이다. 해도 항상 그 이상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매번 위기를 잘 넘기고 나면 제가 가진 퍼즐은 하나씩 늘어납니다. '다음엔 이런 방식으로 진행해야지.', '다음엔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미리 해야겠구나.'와 같은 노하우들이이요. 이렇게 모으다 보면 언젠간 이벤트 왕에 멘탈 갑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뜬금없는 마무리로, 이 자리를 빌려 여전히 제 뒷자리에 앉아 계시는 제 첫 사수셨던 선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봅니다. 주식 어플만 보시느라 브런치는 안 보시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