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국제도서전의 승자는 성심당?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카카오 브런치는 도서전에 부스로 참여했다. 2015년 서비스 오픈 이후 처음으로 참여한 대형 오프라인 행사다.
‘작가의 서랍전’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감성 충만 에세이’ ‘더 트래블러’ ‘일잘러의 업業세이’ 등 10개의 테마로 브런치 작가의 글 100개를 큐레이션 해서 보여줬다. 브런치에 좋은 글이 이렇게 많다는 걸 대중들에게 알리는 취지로 기획했다.
관람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 카카오 캐릭터 인형 탈을 배치했고, 한정판 스페셜 굿즈를 제공했다. 도서전에서 책을 2만원 이상 구매한 영수증을 보여주면 카카오 부채를 드리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출판 업계와 상생의 메시지를 담았다. 많은 관람객들이 브런치 부스에 방문했고, SNS에 인증샷을남겼다.
수많은 글이 #카카오브런치 태그를 달고 SNS에 올라왔다. 브런치만큼이나 SNS를 장식했던 키워드가 있다. #성심당 태그도 #카카오브런치 만큼 많았다. ‘책을 사러와서 빵을 샀다’는 글, ‘도서전의 진정한 승자는 성심당’이란 표현도 있었다.
도서전의 메인 장소는 A홀이다. 대형 출판사들이 A홀에 배치됐고 저마다 멋진 부스를 만들었다. 입구는 A홀에 있었고 B홀에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브런치와 성심당은 B홀이었다. (그래서 브런치가 B홀에 배치됐을 때 많은 걱정을 했다.) B홀은 지리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콘텐츠와 빵으로 극복했다.
눈으로 확인한 결과, A홀과 B홀의 관람객 수는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길게 늘어선 줄은 B홀에서 더 많이 보였다. 주말동안 브런치 부스 방문 대기 시간은 최대 30분이었다. 성심당의 튀김 소보루를 사기 위해선 20분을 기다려야했다.
서점에 등장한 100인 탁자
몇 년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 10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대형 탁자가 생겼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서점의 사전적 정의는 ‘책을 사고파는 가게’다. 이 정의를 거스른 이유가 궁금했다. 2016년 6월 28일 자 <조선일보> 기사 「“서점, 이제 문화·분위기·라이프 스타일을 팝니다"」의 일부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점장은 “전에는 서점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고객이 적지 않았고 ‘통로가 좁아 불편하다’는 민원도 많았다"며 “독서할 수 있는 자리 400석을 새로 만들면서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며 즐기는 공간으로 콘셉트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독자 반응이 좋고 장기적으로는 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도서 비즈니스’가 아닌 ‘공간 비즈니스’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로 사업의 범위를 넓혔다. 최근에 개점하는 대형서점은 아예 라이프 스타일 공간을 표방한다.
독립서점도 취향을 저격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의 ‘최인아책방’은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자 카피라이터 출신 최인아 대표가 운영하는 서점이다. 책방이라기보다는 문화센터에 가깝다. 거의 매일 연사 초청 강연과 클래식 콘서트가 이어지고, 동네 주민 파티까지 연다.
김소영 전 MBC 아나운서가 직접 운영하는 ‘당인리책발전소’은 본인이 직접 큐레이션한 책으로 인기를 끈다. 책방 주인이 스스로 셀럽화되면서 주인을 보기 위해 책방을 찾는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서점은 이제 더 이상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당신의 시간을 사겠다’ 타임 마케팅
국제도서전에서 빵을 팔고, 온라인 플랫폼 브런치가 부스를 연다. 대형 서점은 탁자를 놓고, 독립 서점은 강연을 연다. 이들의 공통점은 ‘방문객의 시간을 사겠다’는 전략, 타임 마케팅 (time marketing) 이다.
“수준이 높은 콘텐츠에는 값을 지불한다. 하지만 유료화 전략은 유연하게 가야 한다.”
『콘텐츠의 미래』(2011, 책읽는수요일)의 저자 프랭크 로즈가 했던 말이다. 테크 매거진 <와이어드WIRED>의 객원 편집자이며 미디어‧콘텐츠‧IT 분야의 전문가다. 수준 높은 콘텐츠에 값을 지불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재화로서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생산자들은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유연한 유료화 전략’은 무엇일까. 콘텐츠 유료화를 고민할 때, 보통은 유료와 무료의 양극단만 생각하게 된다. 유료 판매를 할 것인가, 무료로 보여주고 광고 등 다른 비즈니스를 할 것 인가 고민한다. 20세기만 해도 콘텐츠에 값을 지불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곳곳에 버스 회수권과 껌 등을 파는 가판이 있었고, 각종 일간지와 주간지, 매거진을 구입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망이 곳곳에 깔리며 무료 콘텐츠 시장이 생겼다. 콘텐츠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사람 모아놓고 광고를 보여줬다. TV 매체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방식이 텍스트 콘텐츠 시장에도 적용됐다. 무료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콘텐츠는 돈 주고 사보는 것이라는 걸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문과 잡지, 출판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료 콘텐츠는 가능한 많은 사람의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야 광고 단가가 높아진다. 일부 콘텐츠 생산자들은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고, 흥미 위주의 가벼운 콘텐츠를 만들었다. 미디어 시장에는 효과적으로 트래픽을 모을 수 있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등장하기도 했다.
무료 기사 하나를 보려면 수많은 광고를 봐야 한다. 온라인 기사 한 개를 볼 때 무려 10개가 넘는 광고를 함께 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2018년 인터넷신문위원회 조사) 독자들은 혼탁해진 무료 콘텐츠 시장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그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국의 유서 깊은 미디어 <뉴욕타임스>는 2010년을 기점으로 온라인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넘어섰다. 가짜 뉴스에 시달린 많은 독자들이 “차라리 돈을 낼 테니 신뢰 있는 뉴스, 정확한 뉴스를 보여 달라”고 말한다.
텍스트 콘텐츠 시장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20세기까지 유료에서 2000년대 초 무료로 변화했고, 현재 2010년대 후반은 질 낮은 무료 콘텐츠에 지친 독자들 덕분에 유료 콘텐츠가 다시 부각 되고 있다. 유료와 무료가 복합된 시장이 형성된 셈이다.
유료와 무료, 경계의 모호함
책은 돈 주고 사서 볼 수 있는 재화‘였다’. 서점에 100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가 생겼다. 탁자가 생기면서 재화로서 역할이 줄었다. 사실상 서점에선 무료다. 하지만 이 책을 집으로 가져오려면 유료다. ‘서점에선 무료’지만 ‘소장하려면 유료’다.
유료와 무료 그 중간 지점에 ‘유연한 유료화 전략’이 있다. 무료인 듯 무료 아닌 유료 같은 모호함을 무기로 하는 전략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2018, 흔)의 발견으로 최근 출판계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도 이런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일부 콘텐츠를 무료로 보여주지만, 책의 형태로 소장하려면 펀딩을 해야 한다.
게임시장이 이런 모호한 전략을 아주 잘 활용한다. 무료인 줄 알고 다운로드 받은 게임이 지속적으로 현금 결제(속칭 ‘현질’)를 유도한다. 반복 행동(속칭 ‘노가다’)을 하지 않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영리하게 만들어진 ‘유연한 유료화 전략’이다.
웹툰, 웹소설 시장도 유‧무료 복합 방식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기다리면 무료’ ‘오늘만 무료’ 등이 유연한 유료화 전략이다. 무료로 앞부분을 보여주고, 기대감을 한껏 높인 후 더 보려고 하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을 기다리라고 한다. 참을 수 없으면 돈을 내고 봐야 한다. 그 중심에는 고객의 시간을 붙잡아 두겠다는 ‘타임 마케팅’있다.
텍스트 스트리밍의 시대
출판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도 ‘타임 마케팅’이 핵심이다. ‘무제한 책 대여 서비스’는 좋은 사례다. 월정액 회원으로 가입한 기간엔 언제든지 들어와 책을 읽을 수 있다.
예스24는 한 달에 5,500원이나 7,700원을 내면 전자책을 무제한 읽을 수 있다. 밀리의 서재는 9,900원, 리디북스는 6,500원에 무제한 전자책 읽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책의 규모와 종류는 다르지만, 한 달 이내에 읽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전자책을 제공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수백억 원대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리디북스는 이미 2016년 200억 원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키우고 있으며, 매출 또한 급증하고 있다. 2014년 186억 원이었던 매출은 2017년 665억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으며 2019년은 1000억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2018년 1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온라인 책 대여 서비스가 성장 가능성 큰 시장이라는 걸 입증했다.
밀리의 서재는 웅진씽크빅 CEO 출신인 서영택 대표가 2016년 창업한 회사다. 2017년 6월 앱 서비스를 런칭했으며, 유료 모델은 2018년 10월 말 오픈했다. 2018년 1월에 앱 내 결제를 시작으로 결제 수단을 지속적으로 늘려가면서 안정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병헌과 변요한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도대체 어떤 회사기에 저런 A급 모델을 쓸 수 있냐’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마케팅은 성공했다. 회원수가 급상승해 약 3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이 중 12%인 3만 6천 명이 유료 결제 하는 회원이다. 한 달에 9,900원 내면 3만 여 권의 전자책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제공하는 권수로만 치면 국내 최대 규모의 무제한 구독 서비스다.
리디북스는 전자책 시장에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는 플랫폼이다. 2009년 창업 이후, 2017년 기준 655억 원의 매출을 내는 회사로 키웠고, 기업가치는 2300억 원에 달한다. 177만 권의 전자책을 보유해 전자책 시장 독보적인 1위 업체다. 약 4억 권의 책이 리디북스를 통해 유통됐다.
리디북스의 무제한 서비스 ‘리디셀렉트’의 강점은 제공하는 4천 여 권의 책이 대부분 베스트셀러라는 점이다. 최소한의 질을 담보한다. ‘믿고 보는 리디셀렉트’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준다. 월정액은 6,500원으로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다.
‘우리는 종이책과 경쟁하지 않는다. 책과 친하지 않은, 책이라면 거부감부터 느끼는 새로운 고객군에게, 책을 접하는 시간을 늘려주고, 책에 담긴 콘텐츠의 매력을 알리고 친숙하게 만들고 있다.’
밀리의 서재와 리디북스가 공통으로 시장에 전달하는 메시지다.
넷플릭스와 경쟁해야하는 도서 플랫폼
‘스트리밍(streaming)’이 대세다. 스트리밍의 사전적 정의는 ‘주로 소리(음악)나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파일을 전송하고 재생하는 방식의 하나‘다.(위키백과 참고) 유튜브라는 영상 스트리밍으로 언제든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넷플리스가 그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멜론 등 음원 스트리밍으로 언제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제 책도 스트리밍 시대다, 월 1만원 이하의 돈으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언제든 스마트폰에서 꺼내볼 수 있다. ‘텍스트 스트리밍’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유료 구독 스트리밍의 핵심 전략은 두 가지다. ‘귀찮음 제거’와 ‘부끄러움 유발’이다. 언제든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많은 귀찮음과 수고를 제거해준다. 어떤 음악을 듣기 위해 이제 더 이상 CD를 구입하거나 CD 플레이어를 작동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영상을 보기위해 ‘본방 사수’ 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수많은 리스트를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또 하나는 ‘부끄러움 유발’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파일의 전송이 자유로워졌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영화나 음악, 책을 스캔한 파일까지 죄의식 없이 거래해왔다. 창작자 대우는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 제대로 값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사람들은 손해 보는 구조였다.
플랫폼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값을 지불하는 장치를 고안했다. 창작자에게 그 대가가 직접 전달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런 장치 중 현재 규모의 경제를 만들며 잘 안착하고 있는 모델이 ‘구독형 유료 모델’이다.
이제 영화나 음원을 불법 다운로드 받는 행위가 부끄러운 시대다. 예전처럼 ‘나 이거 다운 받았다’고 불법 행위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돈을 내지 않을 거면 광고를 봐야한다.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 지불해야한다. 앞으로 이런 구조는 탄탄하게 강화될 것이며, 구독 모델은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스트리밍 시대에 밀리의 서재와 리디북스는 넷플릭스와 경쟁해야 한다. 콘텐츠를 감상하는 시간은 정해져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콘텐츠 플랫폼은 더욱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수많은 자본금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
벌써부터 구독을 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간을 아깝게 하거나, 찾아보지 않는 서비스는 가차 없이 구독 해지한다. 수많은 콘텐츠를 한정된 시간에 모두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 싸움이다. 한정된 ‘고객의 시간’을 사로잡아야한다. 도서 플랫폼들은 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도서전에서 빵을 파는 게 뭐 어떤가.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사로잡았다. 그걸로 됐다.
‘타임 마케팅’ ‘유연한 유료화 전략’ ‘텍스트 스트리밍 시대’ 관련 내용은 제가 쓴 책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2019,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책에 더 자세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