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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Feb 18. 2018

당신의 콘텐츠는 비싸다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왜 책값은 많이 오르지 않을까?


그렇게 많이 팔리진 않아서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두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첫 번째 책은 2009년에 출간한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이다. 9년 전만 해도 20대였다.


당시 고향인 수원에서 출퇴근 하던 나는,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반지하 방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기자라는 업을 갖고 있었다. 회사가 광화문이어서 가까운 곳으로 자취방을 잡았는데, 나의 이사와 동시에 회사도 상암동으로 이사 갔다. 출퇴근 시간은 줄어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독립해서 좋았다.


인턴이 새로 들어왔다. 부산 출신이고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서울 생활은 처음이었다. 노량진 옥탑방에서 자취했다. 같은 20대고 같은 자취생이었다. 돈이 조금 더 있었다면 모든 게 다 갖춰진 풀옵션 원룸에 살 수 있었다. 적은 예산에 맞추다 보니 한 명은 땅 아래로, 한 명은 하늘 위로 올라갔다.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이걸 글로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지하 남자와 옥탑방 여자의 자취 이야기'라는 주제로 일하고 있던 매체에 연재했다. 기사라기보단 생활 에세이다. 포털에 종종 노출되면서 이야기가 알려졌다. '공감한다' '힘내라'는 댓글과 함께 '궁상맞다' '지질하다'는 악플이 이어졌다.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이 왔다. 두 군데 연락이 왔는데, 대표님의 첫인상이 좋았던 곳과 출간 계약을 맺었다. 그땐 없던 말이지만 요즘 말로 '듣보잡'이었던 우리를 작가로 대우해줬다. 그 출판사의 대표님은 이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을 독점 출간했다. 피케티 열풍이 불기 전 혜안을 갖고 판권을 계약해둔 덕이다. (혜안이 있으신 분인데, 나는 아무것도 못 해 드려 죄송하다.)


책의 가격은 12,800원이었다. 책으로 큰 돈을 벌진 못했지만, 나의 첫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사비로 책을 구입해 일가친척들에게 돌렸다. 굳이 친구들을 불러 출간 기념회와 사인회를 하곤 했다. 책 값도 많이 나왔지만, 술 값이 더 나왔다. 출간의 가장 큰 소득은 따로 있다. 노량진 옥탑방에 살던 그분, 지금 나의 아내다.


두 번째 책은 2017년에 출간된 '스토리의 모험'이다. 스토리펀딩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만났던 창작자들의 이야기 27편을 담았다. 창작자들과의 만남과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과정들, 독자들의 감동 댓글과 창작자의 프로젝트 이후의 근황까지, 그동안 프로젝트에서 소개하지 못한 뒷이야기를 담아냈다.


책의 가격은 14,000원이다. 가격을 얘기하는 건 책을 사보라고 광고하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아직 팔고 있으니 한 권 사주시면 감사합니다.) 8년 동안 책 값이 1,200원 올랐다. 9.4% 상승했다.


8년 전 점심 밥값이 5000원 내외였다고 기억한다. 현재 점심 밥 값은 아무리 싼 걸 찾아도, 내 직장이 있는 판교 기준 7000~8000원이다. 7000원이라 치면 2000원 올랐다. 40%나 상승했다.


밥값이 40% 오르고, 집값은 체감상 그보다 더 올랐다. 다양한 재화의 가격이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오를 때, 책의 가격은 10%도 상승하지 못했다. 왜 책 값은 이것밖에 오르지 않았을까?



독서율이 역대 최저치다. 국민 10명 중 4명은 지난 1년간 책을 1권도 읽지 않았다. 전체 독서 인구가 줄어들면서 한해 성인 평균 독서량도 8.3권으로 2015년 9.1권에 비해 0.8권 줄어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내용이다. 만 19세 이상 성인 6천 명과 초등학생(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참고 기사 : 국민 10명 중 4명, 1년간 책 한 권 안 읽었다 <노컷뉴스 17.2.5>)


역대 최저로 책을 읽지 않는다. 출판사들은 지레 겁을 먹는다. 가격을 높이고 싶어도 높일 수가 없다. 잘 사보지 않는 책을 비싸게 받으면 더 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책 값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책을 쓰는 저자에게 노동의 가치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책을 쓰는데 들였던 시간, 열정, 비용, 지식 노동과 육체적 노동의 대가를 받기 어렵다. 책을 만드는 사람도 그렇다. 많은 출판 업계 종사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책이 한 권이 정말 14000원 밖에 받을 자격이 없을까?


콘텐츠 유료화, 그 어려운 일을..


"이제 회사 그만두라는 얘긴가?"


2014년 처음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실의에 빠졌다. 권고사직의 다른 이름인 줄 알았다. '콘텐츠 유료화' 우리는 어려운 미션을 받았다.


콘텐츠가 가야 할 길이다. 이상향이며 옳은 길이다. 그래서 내가 "콘텐츠 유료화 프로젝트하고 싶다"고는 했다. 다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건 다르다. 해보고 싶다는 걸 정말 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콘텐츠 앞에 두고 독자들은 지갑을 굳게 닫는다. 닫은 지 꽤 됐다. 처음엔 인터넷이 공짜로 콘텐츠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였다. 똑같은 콘텐츠를 돈 내고 볼 이유가 없었다. 몇 년째 구독하던 신문을 끊었다. 아무리 자전거를 준다 해도 독자들은 신문을 외면했다.


2000년대 중반 무가지가 생겼다. 공짜 신문은 경쟁이 치열했다. 무가지 판촉원은 형형색색의 점퍼를 입었다. 마치 대통령 선거 운동원 같았다. M 무가지는 초록색, F 무가지는 빨간색이었다. 서로 자기네 신문 보라고 지하철 역 앞에서 진을 쳤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무가지를 꼭 쥐어주었다. 신문-잡지를 쭉 나열해놓고 팔던 가판대가 사라졌다.


2010년대 접어들면서 무가지와 판촉원들은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빈자리를 채웠다. 무가지가 없던 시절,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신문이나 책을 사서 봤다.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돈을 내고 사보지 않아도 됐다. 콘텐츠는 풍요로웠다. 돈을 낼 이유가 굳이 없었다.


이렇게 소비자의 지갑은 닫혔다. 콘텐츠는 무료로 풀렸고, 거기에 각종 비즈니스가 붙으면서 다양해졌다. 양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질적 성장이 함께 가지 않았다. 공짜 콘텐츠 시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더 자극적인 내용과 사진을 담고, 파격적인 제목을 달기 시작했다. '검색어 사냥' '어뷰징 기사'라는 말에, 그걸 생산하는 '기레기'라는 말까지 생겼다. 조회수가 광고 매출과 연계되기 때문에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난 '콘텐츠 유료화'라는 미션을 해야했다.  무료 콘텐츠 시장은,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광고주가 끼어있는 구조다. 이 구조에선 생산자도 소비자도 100% 만족할 수 없다. 생산자는 광고주의 눈치를 봐야 하고, 소비자는 보고 싶지 않은 광고를 봐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직접 만나야 한다. 연결된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콘텐츠의 정당한 가치를 지불한다면, 이런 구조는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다.  


2014년 9월 뉴스펀딩이라는 이름으로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론칭했다. 처음엔 저널리즘 중심으로 시작했다. 기자들이 본인의 콘텐츠를 알리고, 여기에 응원하거나 참여하고 싶은 싶은 사람이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후원하는 방식이다.


2015년 10월에는 스토리펀딩으로 확대 개편했다. 다양한 콘텐츠 영역의 요청이 있었다. 저널리즘 콘텐츠에 더해 출판-아트-스타트업 등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2018년 1월 현재까지 스토리펀딩은 139억 원의 펀딩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과 모바일에선 수많은 서비스가 사라지고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3년 넘는 시간 동안 스토리펀딩은, 어쨌든 살아남았다.


독자의 따뜻한 항의, 콘텐츠는 그렇게 팔린다


2014년 서비스를 론칭할 때 자신이 없었다. 나 조차도 콘텐츠에 돈을 내지 않는데 과연 독자들이 지갑을 열까 걱정했다. 그래서 콘텐츠의 비용을 한정했다. 1,000원을 최저로, 10,000원을 최고 금액으로 정했다. 1,000원 이하는 너무 적었고, 10,000원 이상은 내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서비스 오픈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독자의 강성 항의가 들어왔다.


'제가 50만 원을 후원하고 싶은데, 왜 10,000원 밖에 후원을 못하게 해놓았나요? 중복은 가능한 것 같아서  50번이나 결제했어요. 이 부분 개선해주세요'


항의긴 항의인데, 애정 어린 따뜻한 항의였다. 당시 50번이나 중복 결제를 했던 독자분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괜히 미안해지면서 가슴이 뜨끔했다. 판단이 틀렸음을 알았다.  스스로 콘텐츠의 가격을 규정했다. '이건 10,000원짜리'라고 콘텐츠에 가격을 매겨버린 것이다.


바로 새로운 기능을 적용했다. 일종의 백지 수표 기능인 '통 큰 후원'이다. 독자가 정해진 리워드 금액에 상관없이 원하는 금액을 입력할 수 있는 기능이다. 현재 약 50%의 후원자가 마음에 드는 콘텐츠에 정해진 금액이 아닌 '통 큰 후원' 한다. 한 번에 1000만 원을 내신 분이 있다. 700만 원, 500만 원을 내신 분은 아주 많아서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콘텐츠의 가격은 소비자가 정한다'


스토리펀딩을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콘텐츠의 가격은 소비자가 결정한다.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콘텐츠만 좋으면 독자는 언제든 주머니를 열 준비가 되어있다.


스토리펀딩 뿐만이 아니다. 콘텐츠 유료화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퍼블리' 플랫폼에서는 프리미엄 리포트 가격이 17,000원 내외다. 실물 책이 아닌 인터넷 상에서 볼 수 있는 리포트만 제공해주는데 실물 책보다 가격이 비싸다. 책보다 비싸지만 독자들은 좋은 콘텐츠에 그 정도 값을 지불할 가치를 느낀다. 퍼블리의 대부분 프로젝트는 성공하고 있다.



2018년 2월 5일 기준 스토리펀딩의 총 후원액은 139억 원이다. 총 후원자 수 38만 명이다. 이는 스토리펀딩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된 수치다. 총 후원액을 총 후원자 수로 나눠보면 1인당 평균 후원액 35,910원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1명이 후원을 이 정도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스토리펀딩에서 가장 많이 진행된 리워드 유형은 책이다. 보통 책 한 권을 리워드로 제공한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진 않지만, 책 한 권을 받기 위해 3만 원 이상은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프로젝트에서 3만 원의 리워드가 책 한 권이다.


1인당 후원액은 2014년 10,000원부터 2018년 현재 약 36,000원까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독자를 울고 웃게 하고 몰입하게 한다면, 독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런 가설을 데이터로 계속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리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나의 세 번째 책은 가격을 좀 더 높이자고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당신의 콘텐츠는 생각보다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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