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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Apr 17. 2020

<일간 이슬아>와 구독 경제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플랫폼이 된 개인


안녕하세요. 이슬아입니다. 저는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연재 노동자입니다. 매일 철봉에 매달리고 물구나무를 서고 이런저런 잡문을 기록하며 지냅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 기간이 시작되어 수필 연재를 시작합니다. 구독해주실 분들을 찾습니다.


<출처 : 일간 이슬아>

<일간 이슬아>를 만난 건 2년 전이다. 이슬아 작가는 독특한 사진과 발랄한 문장으로 본인을 소개했다. “1만 원의 구독료를 내면 월화수목금 당신의 이메일로 글 배달해준다”며 “글 하나당 500원 꼴”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주말은 쉰다는 점이 좋았다. 독자도 작가도 주말엔 쉴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구독 모델이 잘 될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 구독의 방식이 복잡하다. 구글 독스(구글에서 제공하는 설문을 받을 수 있는 툴)에 이메일 등 다양한 개인 정보를 남겨야 한다. 또 계좌 이체로 구독료를 입금해야 한다. 수십 개의 간편 결제 시스템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계좌 이체는 참 아날로그 했다.(물론 이메일도 디지털 방식이지만, 이메일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계좌 이체로 입금을 받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스럽다’. 이런 측면에서 ‘아날로그’라는 어휘를 선택했다.)


개인 메일의 내용은 언제든 복사와 붙여 넣기가 가능하다. 메일 포워딩(다른 사람에게 메일을 바로 전달해주는 방식)도 자유롭다. 저작권 및 유통권 보호가 어렵다. 전파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전파할 수 있는 게 이메일이다.


나의 얕은 우려와 달리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는 큰 성공을 거뒀다. 연재는 6개월간 성황리에 진행됐다. 어떠한 플랫폼도 거치지 않고 작가가 독자에게 글을 직거래하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이슬아는 독립적으로 작가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다.


2018년 봄부터 가을까지 메일로 연재한 글들을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묶어 출간했다. 이 책은 시사 주간지 <시사IN>과 전국 독립 책방이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책' 1위에 선정됐다. 지은이는 이슬아, 펴낸이도 이슬아다. ‘헤엄’이라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플랫폼 독립에 이어 출판사 독립까지 이뤘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전 어느 겨울날, 이슬아 작가를 만났다. 사업 제휴 목적이었지만 ‘팬심’이 컸다. 이슬아 작가에게 지난 두 번의 <일간 이슬아> 연재 소회를 들었다. 우선 아날로그 한 방식이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다. 이슬아 작가는 ‘독자들은 이런 불편함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해야만 볼 수 있는 글’이라 소중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오늘날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관계'다”

- 로비 켈먼 벡스터, <멤버십 이코노미>


플랫폼 사업자는 편리한 서비스 기능을 제공해,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리한 기능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보다 중요한 가치는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다. 쫀쫀한 관계가 유지되면, 각종 데이터를 손수 취합하고, 계좌 이체로 돈을 보내는 수고 정도는 기꺼이 감수한다.


이슬아 작가는 시즌 3의 연재를 고민하고 있었다. 구독자수가 크게 늘면서 수많은 독자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고 발송하는 작업이 매우 고되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연재할 때, 병원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며칠 후 이슬아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작가 이슬아입니다. 파주에서 겨울을 보낸 뒤 다시 ‘일간 이슬아’ 연재를 시작합니다. 세 번째 시즌입니다. 연재 3년 차인 만큼 더 풍성한 이야기들을 보내드리기 위해 몸과 마음을 굴려보겠습니다


구독 경제에 올라탄 플랫폼


<일간 이슬아>처럼 많은 콘텐츠 플랫폼이 ‘독자 관계 기반 구독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식 콘텐츠 플랫폼인 <퍼블리>, <폴인>, <북저널리즘>은 최근 약속이라도 한 듯 구독 멤버십 상품을 출시했다.


그동안 크라우드 펀딩, 단건 판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콘텐츠의 유료화를 실험했다. 크라우드 펀딩과 단 건 판매는 단기간에 콘텐츠 반응을 체크할 수 있고, 출간에 필요한 재원을 빠르게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프로젝트 단위라 일시적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획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프로젝트별 성과의 차이가 커서, 안정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어렵다.

<출처 : 퍼블리>

퍼블리는 21,900원, 북저널리즘은 19,000원, 폴인은 12,800원의 월 멤버십 상품을 운영한다.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책 한 권의 가격, 신문 한 달 구독료 등을 기준으로 잡았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플랫폼에서 발행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다. 또 플랫폼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강연, 스터디 등에 우선 초대되거나 할인된 가격에 참여할 수 있다.


월 멤버십 상품은 단 건 판매에 비해 빠르게 큰 거래 규모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많은 독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신규 콘텐츠 기획을 하거나, 독자 대상 큐레이션 및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어려운 점도 있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독자를 위해 콘텐츠의 풀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 현재 텍스트 콘텐츠 멤버십 시장은 이제 막 태동하는 극 초기 시장이며, 적극적으로 멤버십에 가입하는 독자들은 대부분 텍스트 콘텐츠의 적극 수용자다. ‘한 달 만에 멤버십에서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읽었다, 더 이상 읽을 게 없다’며 멤버십을 연장하지 않을 수 있다. 플랫폼은 꾸준히 신규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소싱해야 한다. 초기 콘텐츠 풀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 또한 필요하다.


독자 입장에서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멤버십에 포함된 여러 혜택 또한 누릴 수 있다. 큐레이션을 활용해 콘텐츠 탐색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단 건 결제보다 금액이 비싸고, 다달이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담이 크다는 단점도 있다

  

구독 경제 시대, 책의 역할


현재 멤버십 콘텐츠 시장은 OTT(Over The Top, 기존 통신 및 방송사가 아닌 새로운 사업자가 인터넷으로 드라마나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웨이브>가 글로벌에서는 <넷플릭스>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만 한화 약 20조 원을 콘텐츠 제작 비용으로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플랫폼 사업자는 독자의 한정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CEO는 “이제 독자의 잠과 경쟁하겠다”라고 밝힐 정도다. 멤버십 사업의 어려움은 여기서 드러난다. 수십억 수십조의 투자를 하는 영상 콘텐츠 플랫폼과 ‘독자의 시간’을 빼앗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차별점을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텍스트 플랫폼이 내세울 수 있는 차별점은 ‘독자와 긴밀한 관계’와 ‘책 출간’이다. 관계를 위해 오프라인 모임을 멤버십 주요 혜택으로 포함한다. 텍스트 콘텐츠 기반으로 네트워킹 모임을 연결한다. 멤버십 회원들은 함께 모여 독서 토론하고, 강연 듣거나 스터디 한다.

 

또 하나는 책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연재된 내용을 책으로 출간한다. 영상 콘텐츠 플랫폼은 쉽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책의 아날로그 질감을 느껴보고 싶다’ 혹은 ‘텍스트 내용을 반영구적으로 개인 소장하고 싶다’는 구독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퍼블리>는 미래엔 출판사와 협력해 ‘북바이퍼블리(book by PUBLY)’라는 출판 브랜드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크라우드 펀딩 1227%의 목표를 달성한 콘텐츠를 묶어서 낸 <도쿄의 디테일>은 경제경영서 top20(예스24 기준)에 올랐다. 종이 책 판매 성과도 좋았다.

 

<출처 : 북저널리즘>

 <북저널리즘>은 스리체어스 출판사에서 운영한다, 책과 신문의 중간 단계 콘셉트로 가벼운 책을 꾸준히 제작한다. 예전 ‘문고판’과 비슷한 형태다. 마음만 먹으면 1~2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대부분 경제-경영 관련 내용이며 3040 직장인이 알면 좋을 법한 콘텐츠로 구성되어있다. <폴인>은 중앙일보가 모기업이다. 디지털 콘텐츠로 연재된 내용을 책으로 출간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일간 이슬아>를 포함해 구독 플랫폼이 제작하는 책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스스로 출간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콘텐츠 특성상 시의성 있는 콘텐츠의 비중이 높다. 외부 출판사와의 협업으로는 긴밀하고 빠르게 종이 책 제작이 어렵다. 기존 출판사와 책을 내기보다는, 단독 브랜드를 만들거나, 인하우스 출판사에서 기획 단계부터 결합해 속도감 있게 출간을 진행한다.

 

또 다른 특징은 ‘구독자가 원해서’ 책을 출간한다는 점이다. 구독자들은 이미 플랫폼에서 보았던 콘텐츠다. 책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얻지 않는다. ‘개인 소장 욕구’과 ‘촉감 욕구’로 책을 원한다. 독자 수요로 책이 만들어지기에, 플랫폼이 손해 볼 일은 없다. 필요한 만큼 제작하고, 반응이 좋으면 더 제작하면 된다. 책을 ‘콘텐츠 제공의 수단’이 아닌 ‘구독자 만족을 위한 상품’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소유에서 공유로, 공유에서 구독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그동안의 산업은 소비자의 ‘소유’ 목적을 충족시켜줬다. 자동차, 가전제품, 책 등은 돈을 내면 소유할 수 있었다. 최근 몇 년은 공유 경제가 화두였다. 소유한 상품을 함께 쓰자는 것이다.

 

공유는 구독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유의 개념은 희미해진다. 필요할 때만 사용하면 된다. 글로벌 구독 경제 시장 규모는 2010년 2,250억 달러, 2015년 4,200억 달러에서 2020년 5,300억 달러 규모로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출처:크레디트 스위스 리포트)


<출처 : 이코노미조선>

우리나라의 구독 경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텍스트 콘텐츠 시장만 보면, 전자책은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 디지털 콘텐츠는 <퍼블리>, <폴인>, <북저널리즘> 그리고 <일간 이슬아>가 구독 경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소유의 개념을 구독의 개념으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 구독 경제에 빠르게 올라타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도 있다. 반대로 ‘The winner takes it all’ 구독 경제의 승자는 많은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은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가?"에서 "내 고객이 원하는 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직관적인 서비스 형태로 제공할 수 있을까?"로 말이다.

-티엔 추오,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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