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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말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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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천고래 Sep 16. 2019

삶은 계란 맛은 여전하죠

주말 목욕_청주시 상당구 '학천탕'


목욕을 좋아한다고 하면 씻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좋아한다.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그렇게 몸을 담그러 각지의 목욕탕에 다니다 보니, 자연히 흘러넘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러자 그곳에 깃든 시간과 흔적을 모으고 싶었다. 사라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번번이 실패했다. 잰걸음으로 쫓아갔지만 문을 닫았거나 문을 닫으려고 하는 곳들이 늘어만 갔다. 개중엔 새 생명을 부여받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쉬웠다. 멋진 카페나 갤러리가 되어 새 삶을 살게 된 것은 다행이었으나, 옛 자취는 거의 없었으니까. 보존 목적이 없고 특히 상업 공간이라면(게다가 주인마저 바뀌어버렸다면) 그럴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꼭 이곳을 소개하고 싶었다. 시간의 더께 위에 자신만의 새로움을 더한 곳. 카페 목간으로 변신한 청주의 학천탕이다.


청주 구도심, 중앙동의 학천탕. 지상 8층의 건물 전체가 목욕탕이었다. 고 김수근 선생의 유작이기도 하다. 간판은 안상수체.
88년도 오픈 당시 센세이셔널했던 층별 구성이 적힌 옛 간판이 그대로 있다. VIP를 위한 공간이 3층이나 있는 것이 인상적.
'커피 합니다'와 나란히 서있는 '목욕합니다'. 실제로 남탕은 현재도 영업 중이라고 한다.(그래서 목욕 입간판이 있음)


'저게 목욕탕이었다고?' 처음 건물을 마주했을 때 감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보통 목욕탕의 범주에 넣을 수준이 아니었다. 지상 8층짜리 건물 전체가 목욕탕이었다니. 그것도 1988년에 말이다. 게다가 아우라도 독특했다. 직선과 곡선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입면은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작품답게 범상치 않았다. 건너편에 서서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내리자, 깜찍한 입간판이 있었다. '커피 합니다', '목욕합니다', '카페 목간'. 


때수건으로 만든 작품과 인테리어. 참고로 좌측의 작품은 현재 학천탕을 운영하는 박노석 2대 사장님의 작품이라고.
실제로 쓰였던 집기들. 모발 건조기와 목욕탕 입욕권.


애써 흥분한 티를 감추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다음, 찬찬히 1층부터 공간을 둘러봤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목욕탕의 흔적들이었다. 때수건으로 분위기 한껏 낸 소품들과 옛 목욕탕에서 쓰던 손때 묻은 집기들이 이곳이 목욕탕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건, 카페 한편에 그대로 남아있는 라커들이었다. 자그마한 소품이야 어딜 가도 보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라커를 그대로 두고 카페 공사를 하면 제법 품이 많이 들 텐데. 그냥 소품처럼 두지 않고 그에 얽힌 역사를 사인물로 비치해둔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도난의 흔적도 고스란히 살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인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본 옷장의 문짝은 목욕탕 옷장의 형태 및 재질을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는데 나름 역할을 한 옷장이다. 이 전의 옷장은 나무 재질의 가로, 세로 45cm*45cm 정도의 정사각형이었고 바지 걸이, 옷걸이가 없었다. 본 옷장은 우리나라 H사에서도 멜라닌, 엠보싱 옷장 생산이 불가해 수입 판매할 정도의 최고급, 최고가의 옷장이었다. 30년 전 옛 정사각형 옷장에서 직사각형의 문짝으로, 경첩은 흰지로, 재래식 열쇠(나무 번호표)에서 현재의 개인 열쇠 등으로 바뀌는데 목욕문화 중 의류 보관의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 30여 년간(2018년 현재) 수많은 이용객의 옷과 소지품을 보다 쉽고 고급스럽게 보관해온 옷장, 그 역할과 수고했음에 감사를 표한다."
지금 보기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옷장. 문을 열면 그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이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이런 도난의 흔적까지 남겨놓아 더욱 생생한.


그새 진동벨이 울려 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이게 뭐죠. 플레이팅이 특이해도 너무 특이해, 순간 내 것이 아닌가 싶어 당황했다. 카운터 안에서 내 표정을 읽곤 설명을 덧붙이셨다. "이거, 우리가 만든 그릇이에요. 바가지에다 커피 머그 넣은 거고, 거기 위에 얹어진 계란은 서비스. 우리 카페에서 음료 시키면 한 명당 계란 하나씩 주는 거." 주문이 밀려드는 터라 더 길게 설명해주시진 못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콘셉트 디자인. 여기는 목욕탕을 개조한 카페니까 아예 식기류도 목욕탕으로 맞춘 거구나! 


학천탕만의 시그니쳐 목기들. 참 요모조모 잘 짜셨다는 생각에 감탄 연발.
자리에 앉아 삶은 계란에 커피 곁들이니, 여기가 카페입니까 목욕탕입니까?


바가지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들고 2층에 올라와, 전체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받아 온 바가지와 커피 그리고 계란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웃음이 쿡쿡 나왔다. 허기도 지겠다, 계란부터 먹어보자 싶었다. 갓 삶아냈는지 뜨거워 쥘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겨우 껍질을 까고, 호호 불어 소금에 콕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하고 텁텁한 이 맛. 역시 삶은 계란은 목욕을 해도 안 해도 맛있는 거로구먼. 거기에 커피를 곁들이니, 이거야 말로 목욕탕 카페가 추구할 수 있는 궁극의 낭만이란 생각이 든다. 먹고 마시며 바가지와 접시를 사용해보니, 그냥 귀엽고 예쁘게만 만든 게 아니라 쓰임새가 있게끔 만든 점도 마음에 들었다.


2층 전경. 샤워부스며 냉온탕, 씻는 좌석까지 모두 카페 좌석화 시켰다. 여기서 포인트는 원형을 거의 보존했다는 것!
씻는 부스 쪽 좌석.
온탕의 커다란 테이블. 들어가는 발판 자리는 좌석을 해체한 깨알 센스가 돋보인다.
여기는 한증막을 단체석으로 고쳤다.


2층은 목욕탕의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다. 하물며 칙칙한 회색의 바닥까지도 말이다. 언제든 물을 채우면 목욕탕으로 쓸 수 있을 정도랄까. 개조한 자리들은 기존 타일의 색상에 톤을 맞추어 거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군데군데 남아있는 소품이 더해져 더욱 생생한 목욕탕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보통의 목욕탕 개조 공간이라면 분위기를 살릴 몇몇 포인트만 남겨두고 전면 개보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트렌드에도 맞기 때문이다. 아마도 리모델링에 꽤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목욕탕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카페로 개조했다는 건, 결국 목욕업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증거일 터. 사진이 잘 나오거나 소위 요즘 말하는 인스타그래머블 한 공간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 대세를 따라가지 않았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왼쪽은 아마도 바가지탕이었을까? 목욕 의자와 높이가 잘 맞는 걸 보니 그럴지도. 오른쪽은 아직도 비치된 비누와 면도크림.
좌측은 신문 꽂이. 과거 냉온탕 사이에 신문 꽂이를 만들고 거기에 매일의 읽을거리를 코팅해 두었다고 한다. 우측은 세신 요금표.


머무는 동안 좌석을 옮겨 다니며 앉아보았다. 목욕을 하듯, 냉탕에도 가보고 온탕에도 가보고 사우나에도 가봤다. 옷 입고 커피 마시는 건데도 묘하게, 탕 안에서 몸을 지지는 듯 기분이 즐거웠다. 목욕 덕후라면 누구나 흡족해 마지않을 공간이었다. 동시에 궁금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보존을 할 생각을 한 걸까? 궁금증을 한 아름 안고, 빈 그릇을 들고 다시 일층으로 내려갔다.


카운터에 마침 이야기를 들려줄 분이 계셨다.


일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다행히 카운터가 아까와는 달리 한산해 보였다. 조심스레 말을 건네보았다. 


"저, 혹시 말씀 좀 여쭐 수 있을까요?"
"네, 그러세요."
"여기 소문 듣고 왔는데 예전에 목욕탕이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카페를 여시게 된 거예요?"
"여기가 88 올림픽 할 때 문을 열었어요. 당시에 자동문 달고 8층짜리 건물 목욕탕이라니 사람들이 다 놀랬죠. 진짜 멋졌어요. 손님도 많았고.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까 손님도 줄고 그래서 요즘 식으로 경영해보자 해서 올해 초에 카페를 열게 됐죠."
"아 그렇구나. 위에 올라갔는데 진짜 목욕탕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서 신기하더라고요. 참, 여기 듣기로 김수근 선생님 설계한 건물이라고 하던데요."
"맞아요. 그게 저희 아버지가 김수근 선생님을 찾아가서 부탁해서 만든 건데, 처음에는 안 한다 그랬대요. 무슨 시골에 목욕탕이냐고. 근데, 저희 어머니가 진짜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수십 년을 목욕탕 카운터에 살았어. 그래서 그 얘기를 한 거예요, 의뢰하면서. 내가 우리 마누라한테 꼭 빚을 갚아야 된다고, 멋진 목욕탕 지어주기로 했다고. 그랬더니 김수근 선생이 가만히 듣고 있더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자기 부인 얘기를 하더래요. 일본인인데 한국인한테 시집오게 해서 참 많이 고생시켰다고. 그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수락을 해서 설계를 해줬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건물을 어떻게 남의 손에 넘기겠어요. 해체될 게 뻔한데. 아버지도 그랬어요. 이건 김수근 선생님이 준 선물이라고, 그리고 당시에 설계를 수락할 때 이 건물 외벽 원형을 유지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가 리모델링하면서도 거의 다 보존을 하려고 한 거예요."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은 학천탕의 1대 사장이신 고 박학래 님의 장녀, 박노숙 선생님이셨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축가 김수근과의 일화를 비롯해,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드문드문 들려주셨다.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 자동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깥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며, 한창 번성했을 때의 손님으로 물밀듯 했던 목욕탕의 풍경과 도시가 점점 공동화되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때의 이야기. 그리고 카페를 준비하며 삶은 계란 서비스를 고안하고 때수건으로 작품을 만드는 등, 목욕탕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고안했던 아이디어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셨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도 이렇게 솔직하게 많은 이야기를 펼쳐주셔서 듣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따끈하게 데워지는 듯했다. 



디테일들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겨두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이곳의 역사를 짐작하게 했다. 훌륭한 포인트.


선뜻 낯선 이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감사히 받고 돌아서 나오니, 아까 목욕탕에서 보았던 디테일 하나가 떠올랐다. 흰 벽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던 목욕 밸브.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목욕 손님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 주던 30여 년 전의 밸브이다. 온, 냉수를 욕조에 공급하는 밸브로서 동 밸브는 청주에서 구입이 용이했으나 스테인리스 밸브는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구입이 쉽지 않아 서울까지 가서 구입을 해야 했다고 한다. 공로상이란 말없이 묵묵히 공헌한 일에 대한 상이다. 청주시민의 몸과 마음을 훈훈하고 편안하게 한 수고에 공로상이라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목욕 밸브에까지 공로상을 돌리며 카페 벽에 이 밸브를 달았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히 짐작컨대 행복했을 것 같다. 삶을 돌이켰을 때 감사할 존재가 많다는 것은 충실하게 살아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니. 그리고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는 것의 핵심은, 우리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적지 않은 수의 목욕탕은 사라지거나 변해 갈 것이다. 다만 소망한다. 우리의 곁에서 오래도록 물을 채워주던 그들의 수고로움과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를, 사라지더라도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이 목욕 밸브처럼.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고 새 생명을 얻게 된 학천탕이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계속해서 듣고 싶다. 그 옛날 청주 시민들의 몸을 씻어주었던 학천탕. 여전한 삶은 계란 맛과 함께,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도록 남아주길 바란다.




카페(목욕탕) 정보

카페 목간(구 학천탕) ㅣ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115번길 46 1~2층

10:00~22:00ㅣ 에스프레소/아메리카노 4,000원 ㅣ 043-255-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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