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아무 종이에나 볼펜으로 휘갈겨 쓴 문자들이 새파랗게 내 눈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른들이 종이에 뭔가를 쓰는 일을 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엄마는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만 급하게 날려 썼다. 종이가 마땅찮을 땐 상자라도 찢어 뒷면에다 썼다. 기억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또 잊어버리기엔 너무 중요한 그런 것들이 우리 집에 굴러다녔다. 엄마는 한 자라도 적힌 종이는 절대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는데 그 위에 휘갈겨 쓴 정보가 소중한 게 아닌지를 주인에게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전화를 하다 말고 나에게 급하게 펜과 종이를 심부름시켰을 땐 막중한 임무를 맡은 기분이 들었다. 적어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데이터라는 게…. 과연 뭐였을까? 뾰족하게 기억이 나는 것들은 없다. 아마 전화번호 같은 것들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주소 같은 것. 그때는 아는 사람에게 입으로 물어보아야만 알 수 있었던 것들. 흰 종이에 샤프가 아닌 볼펜으로 급하게 휘갈겨 쓸 이유는 정당하다. 마땅히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또 급하게 써야 하므로 종이 모서리서부터 가지런히 쓸 이유는 더더욱 없다. 종이 배 부분에 틀리면 죽죽 그어가며 정보를 남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에 비해 어린 나는 공책을 아무렇게나 낭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새 공책을 쓸 차례가 오면 설레면서도 살짝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공책의 목적과 용도가 내가 채울 내용으로 분명히 빛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종이를 가치 있게 쓰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한 권의 공책을 다 채울 만큼의 강력하고도 선명한 인생의 가닥이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그렇게 자기 숨을 다한 공책으로 기억나는 건 없다.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고 그때그때 필요에 부딪혀 소진되고 모두 '연습'장으로 생을 마감했던 것 같다. 그런 김 빠지는 내 필기와 비교하면 엄마의 메모는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어른의 삶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때의 엄마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샤프를 쓴다. 공책을 아껴 써야 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틀리는 게 무서운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고 지우개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아직은 정말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내가 쓰는 것들은 희미해야 마음이 편하다. 이제부터라도 볼펜을 쓰기 시작하면 내가 이미 내 삶이 시작되었다는 걸 스스로도 믿을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