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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공상태 9시간전

나의 첫번째 주례사

나의 첫번째 결혼식, 그에 대한 주례사 / 박경태 교수님

주례사


몇 달 전 어느 날, 이승아 양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안부도 묻고 요즘 사는 얘기도 하다가 이 양은 제게 갑자기 주례를 부탁했습니다. 저로서는 반갑고 고맙기도 해서,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사실 주례를 많이 해본 것도 아니고, 또 주례를 맡는데 나이가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저보다 인생 경험을 좀 더 많이 하신 분들이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겠노라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승아 양이라면 제가 주례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승아 양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참으로 아끼는 제자입니다. 좋은 날이어서 하객 여러분들 듣기 좋으시라고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양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한 번씩 제 연구실에 놀러 와서 얘기를 나누던 제자였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으면 사는 얘기, 공부하는 얘기를 답하고 인생을 얘기하곤 하던 제자입니다. 사실 요즘의 대학이라는 게 교수와 학생이 따로 만나 인생 얘기를 나누는 공간은 아닙니다. 지식을 주고받고 학술적인 토론을 하는 공간이겠지요. 그러나 이 양과 저는 대학을 그런 의미를 뛰어넘는 공간으로 나눴습니다. 아마도 교수와 학생이라는 표현보다는 스승과 제자라는 표현이 우리 사이를 더 잘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제게 주례를 부탁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양은 2004년에 저희 대학으로 편입을 왔습니다. 말수도 많지 않고 조용한 학생, 그게 이 양에 대해서 제가 가진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틈엔가 자연스럽게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깊은 사색에서 나온 질문들 때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선생을 당황하게 만드는 곤란한 제자입니다!!! ^^


졸업을 한 후 대만에 가서 카타르 항공의 스튜어디스가 되는 면접을 본다고 해서 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승아 양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 양과 주고받은 메일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고, 카타르에서 몇 년 동안 살면서도 이 양은 자기의 사색이 담긴 긴 글을 보내오면 제가 답을 보내고, 읽은 책에 대한 감상과 소회를 보내면 역시 제가 답을 보내곤 했습니다. 아마도 그 글들을 모으면 제법 긴 서간체 문학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이승아 양을 만날 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만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돈과 출세욕, 명예, 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양 한 마리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어린 왕자가 생각납니다. 풍요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어린 왕자입니다. 아이 친구들의 목소리가 어떤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나비를 수집하는지 묻지 않는 우리 어른들은 대신에 그 친구들에 관한 숫자만을 궁금해 합니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인지, 학교에서 몇 등 하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저는 사람이 숫자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존중,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숫자는 공허할 뿐입니다. 저는 인간, 자연, 생명체에 대한 이런 마음들이 오히려 우리들을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더 잘 산다는 것은 더 많이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을 하고 더 많이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왕자의 꿈을 간직한 이승아 양은 그래서 제게 매우 특별한 제자입니다.


자, 이제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두 사람에게 서로 양보하면서 살라고 얘기해줬습니다. 서로 믿으며 살라고 얘기해줬습니다. 서로가 가진 부족함을 서로가 채워주며 살라고 얘기해줬습니다. 지금까지 길러주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얘기해줬습니다. 다들 잘 알고 있는 얘기들입니다. 결혼, 사실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모르는 게 별로 없습니다. 주위의 얘기를 들어서, 주변의 예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미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일일이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두 사람의 사랑이 흘러 넘쳐 우리 사회의 다른 곳에까지 미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두 배 이상으로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행복, 더 많은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이 사랑, 행복,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부부가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구석구석에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부부가 아름답습니다. 태어날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부부가 아름답습니다. 세상이 폭력과 전쟁으로 신음할 때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이들의 손을 맞잡고 함께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부부가 아름답습니다. 어린 왕자의 꿈을 세상 어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부, 그런 부부가 아름답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길을 함께 가려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읽으며 주례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도종환-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함께 잡은 손으로 따스하게 번져오는

온기를 주고받으며

겉옷을 벗어 그대에게 가는 찬바람 막아주고

얼어붙은 내 볼을 그대의 볼로 감싸며

겨울을 이겨내는

그렇게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겨울숲 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

이 세상 모든 길이

겨울강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

그 밑을 흐르는 물소리 되어

내게 오곤 하던 그대여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무엇을 하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라고 말할 때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조그맣게 속삭여오는 그대

그대와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너무 큰 것은 아니고

그저 소박한 나날의 삶을 함께하며

땀흘려 일하는 기쁨의 사이사이에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이것이 비록 고통일지라도

그래서 다시 보람임을 믿을 수 있는

맑은 웃음소리로 여러 밤의

눈물을 잊을 수 있게 하는 그대여 희망이여

그대와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아름다운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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