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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포근 Mar 23. 2020

만만해서 '개'나리라니

네가 폈으니 봄은 봄이구나

이맘때면 출근길 담장에 개나리가 활짝 핀다. 사실 더 빨리 갈 수 있는 출근길이 있지만, 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기온이 찾아오면 봄이 왔음을 짐작하고 이 길로 굳이 돌아 출근을 한다. 10분이 더 걸리면 어때. 출근 빨리하면 일만 더하는 거지 뭐. 그렇게 나는 오늘 출근길 겨울철 걸음의 반의 반도 안되는 속도로 걸으며 개나리를 찬찬히 구경했다.


이파리도 하나 없이 스스로 씩씩하게 피어 높은 담장들과 휑한 돌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개나리. 다른 꽃들이 필듯 말듯해서 봉우리를 자꾸만 들여다보며 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라면, 개나리는 도대체 언제 이렇게 폈나 싶어 신기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나리는 참 씩씩하다. 누가 살펴보며 기다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따뜻한 기운을 찾아 노랗게 활짝 봄의 시작을 알린다.

나리 나리 개나리,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되는 이 꽃. 혹은 이런 개나뤼! 하며 우스개 소리로 쓰이기도 하는 이 꽃. 왜 이왕이면 예쁜 접두사를 가지지 못하고 '개'를 만나게 되었을까. 노랗게 피어나니 '노나리' 라든가 '황나리,' 아니면 씩씩하니까 '강나리' 라든지 '센나리' 같은 이름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닌가 더 이상한가. 하는 정말 이상한 생각을 하며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헉. '개'라는 성을 가지게 된 것이 길가에 흔하게 피어있기 때문이란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닮기는 나리꽃을 닮았으나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해서 '개'를 붙였다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이 진실이든 왠지 슬퍼졌다. 흔하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던가, 닮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못난이 딱지를 붙이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햇빛을 맞으며 씩씩하게 피어난 개나리가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리꽃, 사진 출처 한겨레 웹진 http://ecotopia.hani.co.kr/424841

흔하기에 가장 귀한 것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꽃보다 그 빈자리는 훨씬 더 클테니까 말이다. 개나리가 없으면 그 많은 길의 담장을 노랗게 물들여주나. 척박한 돌산의 풍경에 누가 봄의 숨을 불어넣어주나. 그 많은 울타리에는 누가 노란 색동옷을 입혀주나. 개나리가 없으면 세상 사람들은 노란색에 대해 절반만 알았을 것이다. 개나리가 워낙 흔하고 친숙해서 말이다.


누군가를 조마조마하게 하지 않아도, 길을 걷다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출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개나리 너는 충분히 아름답다. 너는 어디서든 볼 수 있을만큼 흔해서 봄의 도래를 널리널리 알리기에 제격이다. 나리꽃은 어떻게 생긴지 몰라도 개나리가 어떻게 생긴지는 모두가 다 알지 않나. 그래서 너는 노랑색의 대명사이기도 한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개나리 너는 흔하기에 너무나도 귀하다.


 '귀나리' 라는 별명으로 좀 불러보면 어떨까 싶은데 세상의 개나리들이 뭐 '개'로 불리면 어떻냐고 할 것 같다. 이름같은 게 무슨 상관이냐고. 흔해빠져 좋은지 모를 '개'나리라도 뭐 나쁘지 않다고. 그럴거 같다.


돌산을 노랗게 물들인 '귀'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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