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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이 Aug 26. 2015

#13 나사 풀린 고양이, 나른한 점심을 즐기다

랑랑에게 중국이란...

한국 생활 시작한지 3년차. 그러나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되는게 있다. 그게 뭐냐고? ^^

나는 남편과 식사를 할 때마다 저도모르게 긴장이 된다. 특히 맛있는 음식이 나올 때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하나를 먹고 있을 때, 남편은 이미 3,4개를 입안에 쑤셔넣고 와구와구 씹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괜히 질투가 나고 욕심이 생겨서 나도 빨리 먹고싶어진다. 처음엔  남편이 음식을 유난히 빨리 먹는 편이라고 생각 했다. 남편의 식습관을 한국이란 나라와 연결시킬 생각을 미처 못했다. 그렇지만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어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남편은 진짜 양반이었다.  

한국에 온지 몇개월 밖에 안 되었을 때다. 어쩌다 점심에 남자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짬뽕을 시켜 먹는데, 나는 정말 얌전하게 말 한마디 없이 먹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물론 아직 서먹서먹해서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엔 너무 이르다고 판단 했기 때문에 닥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머리를 그릇 안 깊숙이 박아놓고 면과 씨름하는 와중에, 옆에서 들리는 마법같은 소리. "여기 다 드신거에요? 치워도 돼죠?"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 테이블의 빈 그릇들을 이미 치우기 시작하셨다. 정신 차리고 고개 들어보니 글쎄 나 빼고 모든 동료들은 이미 식사 끝. 정확하게 식사 시작한 지 15분만에 게임 오버. 그리고 비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일동. 젠장, 나 빼고 다 끝난겨?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수저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많이 불쌍해 보였는지, 옆에 남자 직원분이 "천천히 드세요, 괜찮아요" 라고 한마디 했지만, 결국 반 이상 남은 나의 소중한 짜장면을 외면한 채 나와버려야만 했던 나. 

  

그리고 한국에 온지 1년 되어가던 어느날, 역시 동료들과 함께 치열한 런치 전쟁을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식당 아주머니가 미친 년 보듯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저 아줌마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사람을 쳐다보는거야... 한참동안 날 쳐다보던 아줌마는 내가 꿈쩍도 안 하자, 답답했는지 손가락으로 내 턱밑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도 당당했던 나, 고개를 숙이는 찰나, 헐! 너무 급하게 먹고 나오는 바람에, 식당의 앞치마를 그대로 하고 나왔던 거다. 누가 대신 쥐구멍이라도 좀 파줘! 

그 후 나는 나만의 전략을 짰다. 내가 아무리 말 한마디 없이 음식에 집중한들, 대한민국 남성들의 광속 스피드는 이길 수없을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바로 방해 전략. 밥을 먹을 때 상대방이 예스/노, 한마디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상대방이 열심히 대답을 해 주는 틈을 타, 죽기내기로 내 밥 그릇을 챙긴다. 상대방의 대답이 마무리가 되어갈 때 즈음, 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또 열심히 먹는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요새는 나도 속도가 많이 늘었다. 남자 직원들과 함께 식사 해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은 중국의 런치 타임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중국의 회사원들도 한국처럼 점심엔 회사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많이들 한다. 그런데 도시락을 들고다니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분들은 많이 못 본 것 같다. 가끔 다이어트 때문에 과일이나 샐러드를 싸오는 동료들을 보긴 했지만... 중국에 있을 때 나도 매일 도시락을 싸고 다녔다. 회사 근처 식당들이 대부분 맛이 없고, 건강에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서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 우린 회사 Pantry에 모여서 각자의 도시락을 개봉한다. 내 도시락이 그 중 단연 인기 1위였다. 왜냐면, 엄마의 손맛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린 보통 한시간 내내 수다를 떨면서 식사를 한다. 날씨가 좋으면, 조금 일찍 마치고 회사 근처를 산책하기도 한다. 주위에 나무를 많이 심어서 그런지, 산책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나른하고 편한 중국의 런치 타임, 이와 반면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맴도는 한국의 런치 타임. 항상 전쟁터에 나갈 사람처럼 급하게 밥을 먹는 느낌이 들어, 사실 편해보이진 않다. 물론 모든 한국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효율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한국인들의 열정이 사실은 부럽고 대단하다. 하지만 가끔은 나사 한개 정도는 풀려야 숨을 쉴 수있지 않을까싶다. 

얼마전, 중국 지사에서 한국으로 출장 온 동료와 함께 식사를 했다. 내게 이런 얘기를 하더라. "너 왜 이렇게 빨리 먹어? 체하겠다!" 매일 불평 불만을 하는 사이, 나도 어느새 변해가고 있었다. 요즘 점점 "빨리빨리" 변해가는 나, 나사 푸는 법을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복습 해봐야 할 것 같다. ^^

이미지 출처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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