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스 Jul 13. 2021

퇴사를 이야기했습니다.

팀장님, 저 그만두고 싶어요.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원래도 잠을 잘 못 자지만, 전날 밤에는 더더욱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새로이 맞이할 일상에 대한 설렘 때문일까.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머리가 뜨거웠다. 이런 밤은 자고 일어나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에 걱정도 됐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시간은 매정하게 흐르고, 나는 황급히 새벽을 쫓아 잠들었다.


결국 늦게 일어난 바람에 간신히 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했다. 이런 날에는 좀 더 깔끔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부스스한 머리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뻐근한 목과 찌릿한 허리를 지닌 채 출근하고야 말았다.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늘어진 티셔츠의 목을 정리하는 그 황망한 와중에도 나는 오전에 꼭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함께 일하는 과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과장님께 "별 일 아니에요"라고 하면서도 끝까지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너무 지친 것 같다고. 내 말을 들은 과장님도 고개를 숙인 채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어쩐지 송구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도, 일이 줄어들 것 같지도 않아 섣불리 잡지도 못하겠다는 과장님께 그동안 드리고 싶었던 얘기들을 했다. 과장님이 중간에서 큰 일들을 턱턱 막아주셔서 감사했다는 것, 같이 일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뿌듯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는 것. 나는 서툴게 이별을 준비한 사람처럼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이야기를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깜깜한 회의실에서 어떻게 사무실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나는 입을 뗐고, 이야기는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지금까지 내가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한 적은 공식적으로는 한 번이다. (다른 한 번은 내가 면담을 요청하려는 찰나에 통보당했다.) 그리고 이 날이 내가 두 번째로 면담을 요청한 날이 되었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 팀장님께, 나는 지쳐서 그만두고 싶다고 전했고 팀장님은 나가서 뭘 할 것이냐며 이 회사의 장점과 다른 회사의 단점에 대해 열거하셨다. 나는 그런 팀장님 앞에서 "뭐라도 하면서 살겠죠.." 같은 얘기나 했다. (정확하게는 "과일 트럭이라도 하려고요"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면허가 없지.) 팀장님은 장기적으로 생각해보고 다시 얘기해보자며 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가셨다. 당연히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나의 통보에 대한 그의 회피적인 반응에, 나는 다음 주에 한 번 더 기회를 노리려 한다. 그러나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회사를 나가려는 나보다 먼저 나가버린 것이 있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에 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