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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Jul 17. 2021

병원에 갔습니다.

회사를 나가려 했는데 허리가 나가 버렸다.

퇴사 얘기를 한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허리에 찌릿함을 느꼈다. 이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종류의 통증이었지만 잠을 바른 자세로 자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출근해서 준비한 퇴사 얘기를 하고, 일을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가 점점 더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때만 해도 금방 가라앉겠지 싶어 퇴근 후에 운동까지 하러 갔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 있으니 느낄 수 없었던 고통이, 운동을 하려고 몸을 움직이다 보니 실감이 났다. 정말 허리가 너무 아파서 말 그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우면서도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하며 운동 선생님이 걱정스레 챙겨주신 마사지 젤을 황급히 받아 들었다(지금 생각해보니 운동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옷도 갈아입기 힘들어 근근이 티셔츠와 운동용 반바지를 걸친 채로 양말도 신는 둥 마는 둥 집에 왔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집까지 오는 길도 고통이었으나 집에 도착해서도 문제는 그대로였다. 우선 양말을 벗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한참을 꼿꼿이 방 중앙에 서있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침대에 걸터앉는 데까지도 억겁의 시간이 걸렸다. 가까스로 옷을 갈아 입고 나서야 이건 병원에 가야 되는 일임을 직감했다. 병원을 싫어하지만 이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아픔은 너무나 강렬했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크게 두려웠다. 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오전에 퇴사 면담을 요청한 내용이 남아있는 팀장님과의 개인 카톡 방에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내 시차근무 양해를 구했다. 세상에, 회사를 나가겠다고 얘기한 날에 허리가 나가버리다니. 오래된 가전제품도 바꾸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고장이 난다더니, 나도 이제 나가려고 하니 버티던 허리가 고장나버린건가? 나는 별안간 울면서 선채로 세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이대로 앉을 수도, 숙일 수도 없으면 서서갈비 밖에 못 먹는 게 아닌가' 같은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다 나아'의 신봉자인 나로서는 안타깝게도, 그다음 날 아침에도 내 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아프지 않게 천천히 준비를 하고, 병원이 열기 20분 전부터 문 밖에서 기다렸다. 시차 근무를 10시 - 19시로 신청했기에, 병원이 여는 9시에 바로 들어가 1시간 안에 진료를 받아야 했다. 미련하게 이 때도 회사에 가서 일 할 생각을 했다.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진료대 위에 누웠다. 차갑고 하얗고 딱딱한 진료대와 적막감. 나는 어쩐지 수술대에 오른 사람처럼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았다. 병원의 선득한 공기가 정말 싫었다. 그렇게 엑스레이를 한참 찍고 나는 죄를 숨긴 듯 움츠리고 앉아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은 평소에 오래 앉아있냐고 물었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디스크에 상처가 난 걸로 보인다고 하셨다. 그리고 통증이 심하니 일단 신경차단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도 받는 걸 권하셨고 진통제를 처방해주셨다. 이러고도 낫지 않으면 MRI 등을 찍어야 될 것 같다고. 짧은 진료가 끝나고 신경차단 주사를 맞기 위해 주사실로 이동했다. 준비하시는 간호사 선생님은 주사 비용이 9 만원이라는 얘기를 두 번이나 하셨다. 나는 인공가죽 커버의 시술대에 엎드리고 누웠다. 처음으로 맞는 꼬리뼈 주사였고, 여기 나 혼자라는 사실이 갑자기 무서워 뭐라도 움켜쥐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 빈 주먹을 꼭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주사는 총 5 곳에 맞았고 이후 물리치료실에서 15분 간 열을 쬐면서 누워있었다. 이상하게 서러웠다. 눈물이 났다. 다 끝나고 병원을 나오니 허리는 묵직하니 뻐근했고 움직임은 좀  편해졌다. 도저히 출근해서 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팀장님께 전화를 했다. 어차피 나간다고 말도 했는데 휴가를 쓰면 뭐 어때.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서 정리하고 쉬어야겠어요" 하니 팀장님은 "그런 얘기 하지 마..."라며 아련하게 말씀하셨다. 그는 아직도 나와의 이별을 회피 중인 모양이다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통화하면서 펑펑 울었다. 아프고 서럽고 무섭고 억울했다. 하필 퇴사 얘기를 꺼내고 나서 몸이 이렇게 된 것도 어이가 없었다. 이제야 좀 쉬어보려는데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도 않고, 앞으로 이 허리로 평생을 살아야 되나 싶어서 무서웠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도 못 할 정도로 아프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다. 2년 동안 꾸준히 운동하면서 나름 코어 근육도 있는데, 왜 내 디스크가 다쳤는지 억울했다. 폭발하던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서 친한 친구에게 '나 지금 겟세마네를 부를 수 있는 심정이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 번에 이해한 친구는 빵 터졌고 나는 터진 허리를 붙잡고 울면서 웃었다. 신이시여,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이 고통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되나요.. 그렇게 겟세마네를 부르는 심정으로 나는 알뜰히 밥도 챙겨 먹고 자리에 얌전히 누워 저녁까지 선잠을 잤다.


지금은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허리는 아프다. 그래서 상체를 숙이지 않은 채로 스쾃 하듯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고, 최대한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게 배에 힘을 줘서 앉아있으려고 노력한다. 발 받침대나 방석도 알아보고, 오래 앉아있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다. 움직일 때마다 괴롭다는 점이 끔찍하고 다시는 이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겠지. 여태까지 앉아서 공부하고 일 하는 동안 잘 견뎌준 허리가 쉴 생각에 신나서 무리를 한 건지, 아니면 버티다가 이제는 좀 쉬어도 되겠다 싶어서 터진 건지, 내가 억지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내 인생과 내 몸에 후회 없이 살고 싶다. 그리고 여태껏 그랬듯, 내게 닥칠 수많은 불행과 아픔에 다 이유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억울하지만 아무 잘못 없이도, 열심히 관리해도 병은 찾아올 것이다. 지금의 고통에서 나는 소위 말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의도 없이 내 인생에 들어와 파도칠 그 '운명적인 사고' 들에 대해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질지 말이다. 앞으로의 불행에도 나는 억울함에 몸서리치며 광분하다가도 또 의미를 찾으려 할 것 같다. 그리고 적응해나가겠지. 이번의 아픔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할지 생각이 깊어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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