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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Jul 30. 2021

발레를 배우고 있습니다.

신경을 계속 써야 해요.

나의 10여 년에 걸친 운동 이야기는 너무나 장황하여, 우선 최근에 시작한 발레에 대해서만 써보고자 한다. 살면서 한 번쯤은 형식이 엄격한 춤을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에 올해 버킷리스트에도 '발레 배우기'를 당당히 적어놓았는데, 현재 하고 있는 폴댄스와 병행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와 괜찮은 위치의 발레 학원이 없어서 올해의 반이 지나가도록 단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레를 포함해 주 5일 운동을 다니는 친구가 나에게 "다른 운동은 해볼 생각 없어? 발레라던가?" 라며 미끼를 던졌고, 나는 "주변에 잘 없어"라고 디펜스를 했으나 친구로부터 무려 이틀 뒤 집 근처에 오픈하는 발레 학원의 정보가 담긴 링크를 받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발레를 시작할 것임을 직감했고 상담 당일에 등록하여 현재까지 총 여섯 번의 수업을 들었다.


첫 수업은 레깅스에 브라탑을 입고 갔다. 누가 봐도 '저 오늘 처음 왔어요' 하는 느낌으로. 수업이 시작되고, 매트 위에서 간단한 워밍 후에 바 워크를 했다. 선생님은 '1번 발'을 하라고 하셨고 나는 재빨리 초등학생 때 방과 후 수업에서 잠시 발레를 배웠던 기억을 쥐어짜 '5번 발'까지 근근이 기억해냈다. 성인 취미 발레는 처음이지만 그래도 폴댄스를 2년 가까이했고 초급자를 위한 수업이라 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거울을 통해 선생님을 보면서 바르게 동작을 하는 것이 참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선생님과 나의 발 뒤꿈치 각도가 대체 왜 다를까'를 생각하며 쉴 새 없이 선생님을 쫓아가며 몸을 움직였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선생님 없이 음악의 박자에 맞춰서 바 워크를 해야 했는데, 순식간에 자세가 흐트러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얼마 안 되는 동작들의 순서도 잊어서 허둥지둥했다. 덕분에 등과 다리 등 여러 부위에 선생님의 손이 닿는 집중 코치를 받았으나, 나는 선생님의 일대일 가르침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았다 ('운동 한정'이다. 교수님의 마이크로 매니징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분 좋게 발레 수업을 마치고 발레를 권해준 친구의 추천을 통해 기본 레오타드와 스커트, 타이즈를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아무 무늬 없는, 까맣고 평범한 기본 레오타드를 구매했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둥실 설렜다. 나에게 '발레'는 그냥 운동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연장과도 같이 느껴져서 그랬을까. 그러고 나서 허리를 다쳐 레오타드를 영영 못 입을 줄 알았으나 (leotard, never worn)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던 나는 허리를 다친 지 일주일 만에 세 번째 발레 수업을 갔다. 어른이 되고 처음 입는 레오타드 앞에서 긴장한 나머지 친구에게 레오타드 입을 때 주의점까지 물어봤다 (친구는 '허리 디스크?'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중요한 걸 깨달았는데 바로 레오타드에 브라캡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제 겨우 세 번째 수업을 들으러  온 초급 자일뿐인데 레오타드의 기상만은 전문인(?)의 그것과 같아 나를 매우 당혹게 했다. 이미 레오타드에 발은 끼웠고 그 상태로 수업을 듣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깨달았지, 운동하는 사람들 모두 다른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당장 나도 지난 수업 때 내 옆의 분이 뭘 입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 만에 레오타드를 받아들이고 네 번째 수업을 갔다.


나는 첫 수업부터 뒤로 탄듀를 할 때 내 발이 계속 뒤가 아닌 사선 뒤로 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빠르게 흘러가는 박자에 맞추어서, 또  가끔씩 선생님에게 발각되어 정직한 방향으로 발을 보내면서도 감이 잘 안 왔다. 그리고 네 번째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슬며시 다가가 여쭈었다. "선생님, 다리가 자꾸 사선 뒤로 가요.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선생님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신경을 안 써서 그래요." 선생님은 본인도 신경 안 쓰면 다리가 사선 뒤로 간다며,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 대답에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부끄러움이 좀 더 컸다. 처음부터 허술하게 흉내만 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부끄러웠다. 그래,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한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라도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쭉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이후에는 한 동작이라도 팔, 어깨, 허리, 골반, 발끝...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모든 것을 안 놓치려고 더 애쓰게 되었다.


이제는 수업을 못 따라갈까 하는 걱정보다는 이번에는 얼마나 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또 뭘 배울지 설레는 마음이다. 내가 익숙하고, 잘하는 걸 하는 것도 좋고, 서툴지만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계속해나가기. 도전하기. 언젠가 어디에선가 첫 발을 뗄 나에게 지금의 내가 건네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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