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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Aug 15. 2021

그래도 시간은 흐릅니다.

여전히 '일상적'인.

퇴사 얘기를 꺼낸 지 한 달이 지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가볍고 행복한 마음을 느낀지도 한 달 전이란 얘기다. 지금은 그 퇴사 선언을 원래의 일상으로 턱, 덮어둔 채 없었던 일인 양 지내고 있다. 회사에서 나는 여전히 힘들고 짜증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래 왔듯이 작은 일에도 웃고 뿌듯함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여태 이렇게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회사를 3년 가까이 다니고 있나 보다.


오늘은 이제껏 쓴 일기들을 봤다. 대체로 기쁠 때보다 힘들 때 일기를 썼기에 글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나는 띄엄띄엄 적힌 나의 절망과 괴로움을 읽으며 앞으로의 내가 '어제와 전혀 다른 나'가 되는 건 영영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달력에 새겨진 평범한 날짜의 하루하루에서 나는 계속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될 희망과 절망 속에서 미래의 나도 과거의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울고 괴로워하고, 후회하고 또 웃고 때로는 설레며 살아가겠지. 영원한 평화와 행복은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껏 버텨왔던 것처럼 또 버틸 수 있을 거야. 또 다 지나갈 거야. 그렇게 심호흡을 한다. 과거의 나는 내가 '나'라서 참 싫었지만 이제는 썩 괜찮게 느껴진다. '나'로 살아온 지 30년 가까이 되어서 그런가 싶다. 좋든 싫든 간에 나는 이런 나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마음을 또 열심히 다져본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더 많이 알고, 느껴야 한다. 그게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일 거야.


지난주에는 친구가 며칠간 자취방에 다녀갔다. 이렇게 오래 함께 있었던 건 처음이었는데, 별 일 없이 그냥 같이 누워있기만 해도 좋았다. 우리는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했다. 즐거운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둘 다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삶은 이렇게 단짠단짠 인가보다. 친구와 있으니 유쾌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분명 똑같은 24시간인데 행복한 시간은 왜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까. 친구가 온다고 자취방에 처음으로 방명록을 만들어두었는데, 친구가 마지막 날 써두고 간 글을 읽고 눈물이 났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역시나 언제나처럼 행복했어'라고 적힌 노트를 보며, 한동안 마음이 휑했다.


운동은 꾸준히 다니고 있다. 특히 발레가 참 재밌다. 이번 주 수업에는 가족들의 추천으로 새로 산 레오타드를 입었는데 화사해서 마음에 들었다. 발레는 동작마다 지켜야 될 것도, 외워야 할 순서도 많고 제대로 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어렵기도 하지만 수업을 듣는 게 행복하다. 음악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는 게 기분이 좋은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천 슈즈로 바닥을 밀 때 나는 삭삭 소리도 듣기 좋다. 가끔 빠르게 흘러가는 동작 속에서 정신을 놓아서, 선생님의 '아르뼁에 힘주세요'라는 말이 '아랫베에 힘주세요'라는 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하는데 그것마저 재밌다. 아직 기본 동작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으니까 괜찮다. 이렇게 행복이 하나 더 늘었다. 회사를 내 삶의 바깥 테두리에 두고, 나는 회사 밖에서의 나를 달랠 방법을 찾으면서 하루하루 또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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