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인 Dec 12. 2022

[오늘의기록] 시아버지랑 통화하다 울어버렸다.

여자만 네 명인 집의 유일한 남자인 우리 아빠.

아빠는 경상도 싸나이답게 왠만해선 우는 법이

없었고 말 보다는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어린시절, 동생들과 나는

퇴근길 아빠 손에 들린

터질 듯한 과자 봉다리를 보며 

넘치는 애정을 느끼곤 했다.


아빠는 30년 넘게 한 직장을 다니시다가

몇 년전, 명예퇴직 하셨는데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빠가 마냥 부러웠다.


아빠의 회사생활은 우리 가족을 지탱했고

그 덕에 딸 셋은 무사히 졸업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얻는 것이 있으면 꼭 무언가를 잃어야만 했던 걸까.

아빠의 신장이,

투석을 해야될 정도로 나빠진 줄도 모르고

나는 취업하고서도 늘상 징징 거리며

퇴사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내가 본사로 옮기며 자취를 시작해서,

부모님을 떠나오고 난 후 아빠는 투석을 위해

팔 수술을 받았다.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투석을 하시고,

그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면

혈관 넓히는 수술도 몇 번 받으셨다.


"회사 다니면서 이렇게 비참한 기분은 처음이다"라고 말하며,

어느 날 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던 아빠의 얼굴.

나는 이제 그 얼굴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건만

왜 아빠 앞에서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건지.


"코로나 양성이란다." 라는 무심한 카톡 하나에,

딸 셋은 오늘 모두 비상이었다.

아빠는 코로나 확진으로 오늘로 예정된

투석을 받지 못했는데, 다행히 투석환자를 위한 코로나 전담병원을 배정받았다.

이번 주 근무일정이 없는 막내는

부모님을 케어하겠다며 본가로 갔다.

차분하고 어른스럽게 대처하는 두 동생들과 달리,

아빠와 통화하며 나는 겨우 울음을 참았다.

나는 부모님이 기댈 수 있는

담담하고 든든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왜 늘 부모님 앞에서는

울고 징징거리는 아이가 되는걸까.


아빠와 통화하며 참았던 울음은

곧이어 시아버님과 통화하다 기어이 터져버렸다.

아빠처럼 경상도 싸나이시고

두 아들의 아버지인 우리 아버님.

늘 시댁과 통화할 때는 밝은 목소리였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님도 적잖이 당황하셨을테지만

아빠에 대한 걱정을,

또 다른 아빠가 토닥여 주셨다.


바라건데, 두 아빠가 슬프거나 힘들 때도

내가 기꺼이 생각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게 전화 걸어,

우실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부모님께 전화하며 종종

어깨에 기대는 것처럼.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스런 존재는 아니더라도

울고 싶은 날,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딸이 되면 좋겠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그리고 시부모님들께도.


아버님, 당황하셨을텐데 같이 걱정해주시고

고민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빠, 많이 아프지말고 빨리 낫자.

오늘따라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나네.



매거진의 이전글 [3년의 고통] 층간소음은 범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