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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Kim Pottery Feb 09. 2018

"그릇 하나만 줘!"  

수공예 도자기가 만들어 지기까지

"그릇  하나만 줘!"


저한테 도자기를 달라는 분들이 서른 명이 넘어가고 있답니다. 처음엔 그냥 웃고 넘어갔는데요..

친한 분, 안 친한 분, 잘 모르는 분, 처음 본 분 까지.. 점점 많아지다 보니,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그냥 달라고 하는지 저도 궁금하더라고요..


수공예 도자기는 생필품이 아니고, 값이 나가기 때문에 선뜻 쉽게 구매할 품목은 아닙니다.

쉽게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줄 수 있는 품목이 아니라는 것인데, 왜 그냥 달라고는 하는 걸까요?

살 수는 없는데 하나 얻고는 싶은... 어떤 부분이 이 이중 심리를 자극하는 걸까요?


결론은, ‘수공예 도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경험해보지 않았고, 여전히 사회 전반적으로 '도예'란 영역이 무엇인지 인식이 잘 자리 잡히지 않아서 인 듯합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저의 '취미'가 아니라, 저의 '직업'입니다. 저는 수공예 도자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도예가'입니다.


이 글은 제 것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글이 아니니까,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이라면 꼭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려요.








일 년 동안 못 본 지인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작업실에서 바로 왔다고 했더니, 서슴없이 물었다.

“그럼 도자기 하나 가져오지 그랬어?”

여러 번 그래 왔듯,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

내 귀에는 ‘출출한데 초콜릿이나 하나 가져오지 그랬어?’와 같이 아주 가벼운 어투로 들린다.

 

“Where is mine?”

“파스타 그릇 하나만 줘 ~”

“그릇 나 줘!”

"도자기 줘!!!! 왜 안 줘?"

"나 이 색으로 줘!"

"아니, 다음에 도자기나 하나 줘."

“I want you to bring a cup for me next time”


많은 이들이 도자기를 그냥 달라고 하는데, 악의적인 뜻은 아니고  '수공예'에 대한 개념을 모르고 건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주제를 돌리거나 장난으로 대꾸한다.


하지만 속 마음은 아프다. 나는 외줄 타기가 무서워도 조금씩 걸으며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고 완주하려고 잡고 있는데, 누군가 그 외줄을 마구 흔드는 것만 같다.


도예가 선배들로부터 익히 들어와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알기에 아주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이 직업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작업실에서 편하게 흙이나 만지작 거리는 주말 취미반 정도로 보이나 보다.

그냥 그 정도는 쉽게 하나 줄 수도 있는 아이템으로 여겨지나 보다.


몸이 너무 힘들고, 수입이 없는 것은 정신력으로 버텨왔다. 이 시기를 버틴 선배들만이 꽃을 피웠기에 나도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시기이다.


나는 아주. 아주. 아주. 어렵고  소중하게 만든 것을

누군가가 사은품 챙기듯 너무나도 가볍고도 당당하게 달라고 말할 때, 나의 진짜 에너지가 소진된다. 내가 진심으로 제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다.

어렵게 몇 개 만들어 놨더니 왜 도자기 안주냐고 몰려들면 나는 무엇을 언제 팔아야 하는 거지?


특히 몸이 힘들때면,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 관둘까?’ 라는 감정이 욱- 올라온다. 사람들을 만날때면 그 감정을 깊이 꾹- 누르고 밝은 모습으로 나가면 나에게 건네는 말은

"도자기 하나만 줘."


도자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작업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고, 설명해줘야 할 이들도 많았다.

나의 힘든 감정을 보여주면, 그들의 하루에 먹물을 튀기는 것 같아 나는 내 감정을 꼭꼭 숨긴다.


그렇게  그냥 넘어가다 보니 도자기를 달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나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점점 피하게 된다...


흙을 주워 담다가 손을 보고 눈물이 잠시. 괴물 손 같았거든요.








수공예 도자기가 만들어 지기까지



노동

흙을 주문하면 한 봉지당 12.5kg이고 기본 스무 봉지를 혼자 이층으로 나릅니다. 유약 가루 봉지들은  5-10kg 정도입니다.  


흙 반죽을 할 때, 흙 사이의 기공을 없애기 위해 강하게 위에서 아래로 눌러야 합니다. 흙 덩어리당 그렇게 100번을 밀어야 합니다. 숨이 차 오르지만, 그렇게 흙 스무 덩어리 정도를 준비해야 합니다.

팔이 아파옵니다. (친한 친구들은 알겠지만) 저는 절대 약한 척하는 여자가 아닙니다.


의자에 앉아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고 4-5 시간을 물레를 차고 굽을 깎다 보니, 언제부턴가 허리 왼쪽에 자꾸 통증이 오는데, 그냥 근육이 좀 뭉친 기분이 아닙니다. 작업을 진행하면  허리 디스크가 올 것 같은 느낌에 하던 일을 멈추었습니다.

이런 노동의 일을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지만 답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유약 가루를 풀 때, 물과 함께 채에 거르는 일을 반복합니다. 유약 가루가 입과 코로 올라오기 때문에 폐병에 걸린 도예가들이 많습니다. 유약에 손을 넣으면 피부가 따끔하고 붉게 올라오거나 갈라지지만, 장갑을 끼면 손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맨손으로 유약을 바릅니다.


수공예 도자기 자체가 부피가 나가고 무거운 아이템입니다. 페어를 나갈 때면, 10-15kg짜리 박스 10박스 정도를 옮깁니다. 큰 테이블 세 개와 의자, 데코용 나무들도 옮깁니다. 1층이 아닌 2-3층으로 옮겨야 할 때는 더더욱 말이 아니죠. 짐을 옮겨줄 파트타임 인력을 부를 예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새 작업실로 옮겨야 하는데, 여러 쓸모없는 것들을 뜯어내고, 카펫도 걷어내고, 나무 바닥 틈틈이 구멍들을 메꿔야 하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광택제를 발라야 했습니다. 벽에 페인트 칠도 해야 했고요.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인력을 고용할  예산은 없었고, 저와 방을 공유할 친구와 함께 여자 두 명이서 모든 것을 마쳤습니다. 일주일 동안 온몸에 멍이 든 기분이었습니다. 멍이 든 듯한 몸으로 디자인 페어에 참가했죠.

작업실 바닥을 뜯다가 먼지 낀 내 얼굴에 놀람...  이런 일 해본적 있으세요?


투자 비용과 재료비

작업실비

흙 값

유약 값

물레 구입비

작업실 수도 설치비, 전기 증설비

가마 소성비

수많은 도구들 구매 비용

페어 참가비

페어 이동비

브로셔 제작비...



연구 -> 실패 -> 연구의 반복

흙은 점성이 있기 때문에 잘못 만들면 갈라집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유약은 물감이 아닙니다. 높은 온도의 불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녹아서 유리질 화 되는 것이 유약입니다.

어떤 재료를 3%를 더 추가하거나 빼느냐에 따라, 또는 가마 안에서 5' 정도의 불 온도의 차이만으로도

색이 완전히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작가마다 자신의 테이터를 축적합니다.

그렇게 실패하고 연구한 것이 삼 년 차가 되고 나니 이제 좀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삼 년 넘게 투자만 했다는 뜻이죠....



제작 과정

'형태 제작 / 바닥 깎기 / 손잡이 붙이기 - 건조 - 초벌구이 - 유약 바르기 - 재벌 구이'

이 모든 과정을 3-4주를 거쳐 마지막 결과물이 나옵니다. 중간에 한 과정이라도 잘못되면 갈라지거나 실패하게 되고, 결과물은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3-4주의 과정을 새로 거쳐야 합니다. 지난 3-4주의 노동비와 재료비는 다 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수공예 도자기'입니다.


손에 상처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손바닥을 토치불에 데어 응급실을 간적도 있었죠.

하루종일 포장 중. 박스 당 10kg 총 12박스.. 아래층으로 혼자 날라야해요.






지인들을 만나면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 저는 그냥 힘들다는 정도로만 짧게 말하면

'도대체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는 표정을 보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가수 이효리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정말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녀의 '정말 힘들었다'라는 그 한마디에는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매우 공감하고 있습니다.


힘드니까 도자기를 사달라는 게 아닙니다.

힘드니까 밥을 사달라는 게 아닙니다.

힘들다고 칭얼대는 것이 아니라,

도예가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얼마나 소중하게 만드는 것인지 말이죠...


문화/예술계에 몸담은 이들에게 그들의 작업을 그냥 달라고 하는 것은 에티켓이 아닙니다.


..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응원에 힘입어 저는 또 다시 흙 반죽하러 가볼게요!





도예가 김은미

인스타그램: eunmikimpo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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