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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살이 Nov 10. 2018

공무원 그만두고 여행중인 30대의 성찰기, 루마니아편1

많은 사람들은 용감하다고 하지만,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나는 마냥 용감하지는 않았다. 


공무원 조직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은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마음속 한편에서는 분명 

주체적인 삶을 외치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잖아, 

다들 그렇게 사는 데는 이유가 있어, 

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상반된 두 목소리가 

몇 개월간 팽팽하게 싸웠기 때문에, 

나의 퇴사 의사를 

회사와 가족에게 말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비유가 꼭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도 비슷하다. 


유럽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거나 

맛집을 방문하는 것처럼 

주로 검증된 국가들을 방문한다. 


서유럽의 영국, 프랑스, 

동유럽의 체코, 크로아티아 같은 곳과는 달리 

루마니아는 여행지로 알려져 있지는 않은, 

즉 검증되지 않은 나라다. 


내가 알고 있는 루마니아도 

한때의 체조 강국, 차우셰스쿠라는 독재자, 

집시의 나라, 그리고 드라큘라 따위의 

영상 속 자료화면에나 나올 법한 

낡고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라고 해서 

그것이 꼭 정답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적어도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불안한 일이다. 

퇴사 후 아내와 함께 1년여를 여행 중인 지금도 

불쑥불쑥 가슴을 찌르는 

마음속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루마니아를 여행했던 한 달을 떠올린다. 

여행지로 검증되지 않은 루마니아에 

오랜 기간 머무는 것에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한 달이 부족할 만큼, 

의미 있고 아름다운 장소들이 

루마니아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타지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가족의 정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루마니아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존재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마 건국자의 동상을 

루마니아 곳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루마니아는 독특하게도

과거 자신들의 땅을 정복했었던 

고대 로마인들을 자신들의 선조로 생각한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주변 국가들인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불가리아 같은 

하얀 피부의 슬라브 민족과는 물론 다르다. 


그렇다고 2천 년 전에 잠시 머물렀던 

고대 로마인들을 자신들의 선조로 생각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뿌리 찾기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놀랐던 부분 중 하나인데, 

개인을 중시하는 유럽인들도 

가족, 고향, 민족, 국가와 같은 

크고 작은 집단들을 그들의 뿌리로 생각하고, 

이로부터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고 있었다. 


그 뿌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져 주입된 것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루마니아 도로를 달리는 

한국 자동차에 대한 반가움과 

알 수 없는 자긍심에는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루마니아에서 

클루지나포카라는 도시에 

9월 한 달간 머물렀다. 


특별한 관광지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30만 명 정도가 살아가고 있는 

루마니아 제2의 도시다. 


우리가 머문 에어비앤비 숙소는 

클루지나포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있었다. 


마을에는 소박한 단층 주택들이 늘어서 있어 

한국의 여느 동네 골목길들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집집마다 마당에 심어져 있는 

포도, 자두, 사과, 라임 등 

다양한 과일나무들이 

풍성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언뜻 보면 조용해 보이는 동네지만, 

어떤 집의 한 마리 개가 짖기 시작하면 

동네 개들 모두가 경쟁적으로 

합창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했다. 


유명 관광지는 차가움과 무질서를, 

유명 호텔은 예측 가능한 획일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에 아쉬움을 느끼는 여행객이라면 

가끔은 무명 도시의 무명 숙박시설을 

선택해 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클루지나포카 근교 도시인 

투르다에는 소금광산이 있다. 


우리에게는 소금광산이 생소하지만 

유럽 곳곳에서 소금광산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사오백 년 전에는 지역 경제를 

책임졌을 소금광산이지만 

이제는 경제성, 안전성 등의 문제로 

더 이상 소금 채굴을 하지 않는다. 


루마니아에 오기 전 우리가 방문했던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소금광산은 

과거의 영광이 빠져나간 탓인지 

그곳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공허함이 있었다. 


그런데 루마니아의 소금광산은 다르다. 

지금은 채굴이 중단된 

소금광산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광산 안을 작은 유원지로 꾸며 놓았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대관람차가 돌아가고, 

탁구, 볼링, 골프 같은 간단한 놀이들을 

즐길 수 있는 세트장도 잘 갖춰 놓았다. 

한여름에도 긴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의 

온도 덕에 피서 장소로도 그만이다. 


무엇보다 광산 안에 자연스럽게 생성된 

시커먼 호수에서 보트를 탄 것은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루마니아 투르다의 소금광산은 

유쾌한 기운이 가득했고, 

그곳을 찾는 주민들과 함께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9월의 루마니아에서는 

하루가 저물어 갈 무렵에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까맣게 수놓는 

까마귀 떼들을 볼 수 있다. 


몇십 마리 정도도 아니고, 

몇 백 마리가 훌쩍 넘는 까마귀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광경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드라큘라로 알려진 

루마니아의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광경을 처음 본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지만, 

이 곳 루마니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신경도 쓰지 않는다. 


까마귀들이 단체로 이동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숙소 주인 할머니에게 여쭤 보니, 

추수철이라 들판에 풍부해진 먹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혼자 기괴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먼 길을 퇴근하는 까마귀들의 모습이 

우리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아 

괜히 안쓰러웠다.



클루지나포카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알바이울리아라는 도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가이드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루마니아 사람들은 

이 도시를 꼭 가봐야 한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알바이울리아는 요새가 유명하다. 

요새는 유럽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7개 꼭지의 별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곳의 요새는 확실히 미학적이다. 


게다가 100년 전, 

당시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루마니아의 통합을 선포한 

도시이기도 하니 상징성도 있다. 


이 도시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건 

사실 집시 때문이다. 


마침 이곳에서는 길거리 음식 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축제를 즐기는 루마니아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이 남긴 음식을 치우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집시들이었다. 


한껏 즐거운 루마니아인들과 

무표정으로 일하는 집시들이 

극명하게 대비됐다.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많은 동유럽 국가에서 

부모와 함께 구걸을 하는 

집시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고, 

그들이 세상에 눈을 떴을 때쯤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클루지나포카에서 머물렀던 

숙소의 집주인은 

수산나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계신 

60대의 할머니셨다. 


아침마다 할머니는 미소와 함께 

루마니아 아침 인사인 

‘부너 디미니아차’를 외치시면서 

직접 내린 커피를 건네주셨다. 

언제나 집 마당에 열려 있는 포도와 자두를 

접시 가득히 담아 주셨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노트에 적은 루마니아 말을 

구글 번역기로 해석하면서 대화했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셔서 

40년간 이 집에서 사셨다. 

자식 두 명을 키우셨고, 

2년 전 결혼한 딸은 

멀리 스페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밤 할머니는 

딸의 결혼식 사진을 찾아 달라고 하시며 

낡은 노트북을 주셨다. 


사진을 보는 할머니의 입가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항상 쾌활했던 수산나 할머니였지만,

자식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세상 어느 부모님이나 똑같았다.


그 날의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여행에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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