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에는 아름답고 특색 있는
도시들이 생각보다 많다.
가볼 만한 곳들이 많다는 건
여행객들에게 분명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루마니아에서는
여행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쉽지 않았고,
때론 고역이기도 했다.
꼬불꼬불한 데다가 곳곳이 파여 있는 도로,
고속열차는 찾아볼 수 없는 철도 탓에
다른 도시로의 이동에는
깊은 인내심과 상당한 체력이 요구됐다.
우리가 한 달간 머문 클루지나포카에서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까지는
서울과 부산 정도의 거리지만,
버스와 기차 모두 편도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웬만한 도시를 다녀오는 날에는
나와 아내 모두 녹초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휴식하기로 했다.
가보고 싶은 곳들은 정말 많았지만,
대신 우리는 몇 도시에 집중했다.
눈 달린 지붕들이 인상적인
시비우 같은 아름다운 도시에
왕복 8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다녀온 후에는
숙소에서 이삼일 정도 푹 쉬었다.
그러다 보면 다시 출발할 에너지가 채워졌고,
힘든 여정을 견디고 도착한
또 다른 도시의 이야기에
충분히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이렇게 여행 중에도
우리에게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보다 더 혹독할 게 분명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꼭 움켜쥐어서
부들거리는 두 손과,
한계를 넘어서서 달린
흐느적거리는 두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회색도시라는 별칭답게
획일적이고 차가운 부쿠레슈티의 미관은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오랜 통치 탓이다.
시민들의 분노가 그와 그의 부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지만,
이미 도시 곳곳에는
회색 건물들이 세워진 후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행정건물이라는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처럼,
속으로는 불안한 마음 가득한 독재자들은
외형에 치중하고 이를 과시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게 아닐까.
의외로 부쿠레슈티의 채도를 높여주는 건
훌륭한 공원들이었다.
루마니아의 공원들에는
초록 잔디밭은 물론이고
넓고 푸른 호수가 함께 있는데,
그 호수에서 느긋하게
노 젓는 보트도 탈 수 있다.
잔잔한 호수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걸 보면,
차우셰스쿠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
큰 건물보다는 차라리
넓은 호수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이라지만,
중요하게 여겼던 일정이
틀어지게 되면 당황스럽다.
부쿠레슈티의 명문 축구팀인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챔피언스리그 예선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지만,
매표소 아주머니는 ‘노 티켓, 쏘리’라는
단 세 마디로 매진을 알렸다.
루마니아 주민번호가 필요해서
인터넷 예매를 하지 못했을 때만 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장에 들어가지도 못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축구에 대한 부쿠레슈티 사람들의 열정을
과소평가한 셈이다.
흥분과 기대를 잔뜩 안고
삼삼오오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취소된 티켓을 살 수 있을지 몰라
계속 매표소 앞을 서성였지만
경기 시작과 동시에 퇴근하는
매표소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그날 우리는 축제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날의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철제 울타리 안에서 빛나고 있는 경기장,
그곳에서 들려오는 관중들의 웅장한 함성 소리,
게이트 직원들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기장을 향해 뛰어 들어갔지만
이내 잡혀 온 어떤 남자.
모두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소소하지만 즐거운 기억들이다.
루마니아 중심부에 위치한
브라쇼브에 도착하면
도시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짙푸른 산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마도 미국의 할리우드를 따라 했을 테지만,
산꼭대기 즈음의 브라쇼브 사인 간판은
이 도시의 귀여운 명물 중 하나다.
저 사인 간판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생각보다 운행이 빨리 종료되는 탓에
우리가 브라쇼브를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의 캐리어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도
자갈이 깔린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야 해서
캐리어를 끌고 가기에는 무리였다.
짐을 넣어 놓을 코인로커도 보이지 않았다.
갈팡질팡하고 있는 우리를 본
한 카페 사장님이
우리 짐을 맡아 주시겠다고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그분 덕에 우리는 즐겁게 산행을 했고,
사인 간판 옆에서
탁 트인 전망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받은 친절은 희한하게도
그 어떤 기억들보다 강렬하게 남아서,
그 카페 사장님은 종종
나와 아내의 대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분을 만났던 브라쇼브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됨과 동시에,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친절을 베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행하는 곳에서 열리는
독특한 축제를 구경해 보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먹고 마시는 축제라면 더할 나위 없다.
보통 유럽의 맥주 축제라고 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가을 무렵이면 많은 유럽 국가들이
저마다의 맥주 축제를 개최한다.
루마니아에서도 브라쇼브 등에서
맥주 축제가 열린다.
사실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루마니아의 맥주가 유명한 건 아니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축제가 열리는 거대한 천막 안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직원들은 쉴 새 없이 맥주를 따랐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많은 사람들은
맥주잔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지만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신 루마니아의 맥주는
여느 훌륭한 유럽의 맥주처럼 깊고 고소했다.
우리에게 아직까지는 낯선
루마니아의 맥주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축제였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누군가의 장점을 알게 되는 건
짜릿하고 감사한 행운이다.
여행기간이 5개월을 훌쩍 넘어가면서,
결혼식 때 했었던 아내의 네일아트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매니큐어로 기분 전환도 할 겸
네일숍을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관광지의 명소나 맛집이 아닌,
실생활과 관련된 곳을 방문하는 건
훨씬 어렵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예약을 위해 용기를 내어 전화했지만
네일숍의 직원은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루마니아어로,
우리는 영어로 몇몇 단어를 반복하다가
어색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성과 없는 통화를 종료했다.
다음 날 직접 매장을 찾아갔고
바디랭귀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예약 일정을 확정했다.
며칠 후 다시 찾은 네일숍에서는
옆 자리에 앉은 다른 손님의 통역으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아내의 손톱에는
그곳의 네일 아티스트가 추천한
보라색 매니큐어가 예쁘게 칠해졌다.
루마니아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 같은
우리만의 뿌듯했던 네일숍 투어였다.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에 머무른 한 달은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인 수산나 할머니와
가족 같은 사이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비록 펜과 종이와 번역기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삼십이 넘은 우리를 ‘아이들’이라 부르는 할머니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과는 아무런 상관없을 것 같은
루마니아라는 나라에
우리와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루마니아를 떠나는 날,
먼 길 가는 손주들에게 하시는 것처럼
마당에서 따 온 자두 한 봉지,
손수 만드신 자두잼 한 통,
우리가 좋아했던 할머니표 옥수수빵 등을
넘치도록 담아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지만,
언젠가 할머니와 다시 만날 거라는 예감이
이상하리만치 강렬하게 든다.
그만큼 우리는 수산나 할머니와 루마니아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루마니아를 뒤로 하고
요구르트의 나라 불가리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