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10년 차가 경험한 다양한 주거형태
그 해 그 날은 내 인생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날이라 할 수 있다.
독립! 대한민국에서 딱딱한 10대를 보낸 사람들은 한 번쯤 꿈꾸던 것이 아닌가.
재미없는 자소서의 자라온 환경에서나 등장할 법한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부모님 손에서 자란 나는 늘! 언제나! 누구보다 더! 독립을 꿈꿔왔다.
‘발품을 팔아 찾은 작지만 깔끔한 집에 포크 하나 수저 하나까지도 내 취향에 맞게 골라 갖춰야지. 냉장고엔 사시사철 맛있는 과일을 가득 채워 넣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는 잔소리도 들을 필요가 없으니, 스스로 생활 패턴을 만들어 멋지게 살 거야.’
지금 와서 보면 얼마나 현실성 없는 상상인가, 싶지만 매년 다이어리 뒷장 ‘하고 싶은 것’ 목록에 써놓을 정도로 독립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러나 대부분의 10대가 그렇듯 나 또한 가출을 할 용기도, 뛰쳐나가 돈을 벌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집 밖의 세상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지했다.
그렇게 나 스스로 적당한 변명을 하며 지내다, 열여섯이 되던 해에 어설픈 첫 번째 독립(?)을 했다. 통학거리 5분인 가까운 학교에 다니면서 기숙사에서 살겠다며 뛰쳐나간 것이다. 성적이 좋거나 집이 먼 학생들이 주로 살았는데, 집도 가깝고 사감 선생님이 자습 감독도 해주신다니 부모님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다.
공동생활이다 보니 사감 선생님의 관리 하에 꽤 엄격한 규칙들이 있었고, 열람실에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늘었지만 그땐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것 자체로도 만족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수학여행이나 성당에서 가는 캠프처럼 짧은 '허락받은 외박'의 기간이 늘어난 것 같았다.
목련관 209호. 2층 침대가 3개, 각자의 사물함이 6개 놓인 작은 방에서 여섯 명이 생활했다. 정해진 샤워시간, 스스로 하는 빨래, 룸메이트끼리 정한 당번, 주말마다의 청소 등 '독립'에 대한 훈련보다는 '함께 사는 것'에 대한 훈련을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님의 걱정이 늘면서 이건 독립인지, 뭔지 느낄 여유도 없이 한 학기 만에 집에 돌아갈 짐을 싸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 원했던 것이 단순히 부모님과의 분리였는지, 독립된 공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뒤늦게 온 사춘기로 부모님께 괜히 반항을 해보고 싶었던 것도 같고, 모든 것이 불안하던 시기에 혼자 있으면 뭐든지 해결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하나 알아차린 것이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각별함이 있다는 것. 그것은 독립에 대한 바람과 비슷한 것이기도 했지만, 또 별개의 것이기도 했다.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것이 없었던 때, 그곳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베개 밑에 숨겨둔 책을 밤새 읽기도, 눈물범벅이 되어 일기를 쓰기도 하던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경계가 애매했던 낮이 지나 밤이 되면 그곳은 나만의 작은 세계가 되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곳에서 스스로 배양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어쩔 수 없이 '모두의 공간'이기도 했고, 틈틈이 잠긴 문을 열며 '내 공간'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난 온전히 나만의 공간, 혹은 독립을 간절히 바랬다.
두 번째 독립의 기회는 예상했던 시기에 다가왔다. 대학 합격 후, 내 거취에 대한 이슈가 가족들 사이에 불거졌다. 편도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기차로 통학을 시키자는 이야기부터 서울 이모 댁에서 통학을 시키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답은 알고 있으나 이제 갓 성인이 된 딸을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두기엔 불안하셨던 것 같다. 결국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는 언니 옆방에서 자취를 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독립한다는 것.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열아홉이 되던 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아는 언니네 옆집'에서 갑자기 독립을 맞이했다.
스물여덟이 된 2018년. 애매하게 독립 10년 차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나 혼자 지내기를 소원했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두 명의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주거 형태라 주위에서 많은 것을 물어보곤 한다.
“안 불편해?”라는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다지. 너무 좋아!"라고 대답한다.
지금 사는 곳은 마포구의 핫플레이스. 망원동에 위치한 방 세 칸에 베란다가 딸린 집이다.
첫눈이 오는 날 부동산의 소개로 본 중, 마지막으로 보게 된 집이었다. 이전 세입자가 8년이나 살고 나가서 한참 리모델링 중이었다. 벽지가 무슨 색일지(생각보다 중요하다), 장판은 어떻게 깔릴지도 보지 못했지만 구조나 집 크기, 위치 등이 마음에 들어 돌아가자마자 가계약을 걸었다.
맨 위층이라 여름엔 좀 덥고 겨울엔 조금 더 춥지만, 리모델링을 해 깔끔하고, 아래층에는 다정하고 애교도 많으신 주인집 아주머니(망원2동 부녀회장님)가 살고 계신다. 위치도 꽤 좋다. 지하철 역까지는 느긋한 걸음으로 7분, 바로 앞엔 버스 정류장과 편의점이 있고, 걸어서 10여분이면 한강 망원 지구에 도착한다. 근처에 구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나 체육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가까운 재래시장엔 생기가 넘친다.
이만하면 눈 오는 날 발품을 팔아가며 구한 보람이 있다.
하우스메이트와의 관계도 재미나다. 한 명은 하우스메이트 구하는 글을 올려 만나게 된 생면부지의 남이었고, 또 한 명은 친구의 친구이다. 성격도, 생활 패턴도, 취향도, 살아온 환경조차 너무나 다르고 같이 살아본 적도 없지만 비슷한 상황에 만나 1년 반째 잘 지내고 있고, 계약기간 이후에도 연장하여 함께 살기로 했다.
2009년 2월 독립 이후로 이렇게 되기까지 10년 동안 꽤 많은 주거형태를 경험했다.
적게는 혼자부터 많을 땐 여섯까지 함께 지냈고, 원룸에서 쓰리룸까지 방 형태도 다양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은 꽤나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으니 조금은 이야기할만한 거리가 있지 않을까?
같은 사람이라도 누구와, 어떤 공간에 사는지에 따라 모습이 달라져서 '이렇게 사면 이렇고~ 저렇게 살면 저래요~'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내 경험담이 '친구와 사는데 어떨까?', '같이 살다 이런 문제가 있을 땐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 이런 사례도 있구나!'라며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