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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ddang Oct 22. 2024

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결혼

홍양은 나보다 2년 늦게 태어났습니다.

홍양은 초등학교를 7살에 들어가고, 재수를 안 했습니다.

나는 8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재수를 하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학번이 같습니다. 그래서 우린 동기입니다. 

동기라는 이유로 2년 위인 나에게 절대로 오빠라고 하지 않습니다.

2년이면, 태어나서 뛰어다니는 아이와 목도 못 가누는 아이라는 큰 차이가 있는데 말입니다.

나에게 정말로 아쉬운 게 있을 때 콧소리로 “오빠~’라고 한두 번 들어본 게 전부입니다.


같은 학교 공대를 다녔지만, 서로 다른 학과이어서 대학시절에는 서로 몰랐습니다.

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홍양은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였습니다.

홍양은 취업한 회사의 직속상사와 트러블이 생겨 1년 만에 퇴사하고, 본인 졸업 학과 사무실 조교로 왔습니다.

욱하고 그냥 사표를 던지는...

직관과 감정형의 ENFP다운 결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되돌아보면, 홍양 인생에 있어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연을 맺고 부부가 되었으니까요.


만일 홍양이 직속상사와 트러블 없이 그대로 회사를 다녔다면, 우린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이러한 우연으로 연결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연설에서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를 말하였습니다. 

인생에 겪는 사건 하나하나가 점처럼 연결되어 길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인연도 그렇게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김이나 작사, 이선희 노래 중에 “그중에 그대를 만나”에서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중략)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인연이라는 건 기적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석사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업한 회사에서 신입들은 현장 업무 경험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울산에서 근무를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홍양과 나는 학교에서 매일 만나다가 취업하면서 지방 근무까지 하게 되어 갑자기 주말 커플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핸드폰과 KTX/SRT가 있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로 연락도 어려웠을뿐더러 울산에 가기 위해서는 5시간 고속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 당시는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해야 해서 서울에 오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6~7시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에 밤 11시 심야 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신입 월급으로 비행기 타고 다니기에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울산으로 출근하기 전날 나는 프러포즈를 계획하고, 커플용 18K 반지를 샀습니다.

식사와 한잔을 곁들이고, 2차로 맥주도 한잔하면서 언제 줄까 하고 계속 타이밍을 봤습니다.

하지만, 홍양을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버스를 기다릴 때까지 반지를 주지 못했습니다.

제 I 성향이 그대로 나타난거지요.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버스 자리에 앉자마자 그냥 말없이 홍양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고, 나도 같은 손가락에 반지를 꼈습니다.


제가 상상한 로맨틱 분위기에서 로맨틱한 말로 프러포즈를 한 건 아니어서 아쉽기는 합니다. 

홍양은 고맙다고 하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함께 손을 잡고 갔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내려서 집에 데려다주고, 다음 주를 기약하면서 울산에 내려갔습니다.

그때 홍양 표정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분위기 없게 반지를 끼워 주다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 글을 쓰면서 기억이 났는데 당시 생각을 물어봐야겠습니다.

물론 예상컨대 '기억 안 나'라고 할 거지만요.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없다는 아쉬움을 안고, 울산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래도 다음 주에 만날 때 보니 다행히 반지는 손가락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렇게 커플링을 낀 우리는 4년 연애를 마치고, 내가 태어난 지 28년째 되던 해 11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마치고, 피로연에서 조그마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난 병역특례로 취업을 해서 병역의무를 마치려면 5년이 지나야 했습니다. 

5년 제대하기 전에는 해외 나가는 절차가 까다로웠습니다. 

내가 입사 3년 차에 결혼을 하게 되어 해외 대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피로연을 하였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건배와 레크리에이션을 하다 보니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이제 그만 가보라 하여도 "한잔만 더"를 외치며 늦게 출발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가 탈 비행기는 이미 마감되었습니다.

우리 둘은 취하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도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데려다준 대학동기가 다시 돌아와서 카운터에 가더니, 다음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여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결혼 첫날부터 술 때문에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갈 뻔했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 내려주고 걱정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제주도가 고향이라 자주 공항을 다녔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모임에서 가끔 이 에피소드가 안주로 나옵니다. 

“너희 둘은 정말 못 말린다.”라고..

그날 술 앞에서는 ENFP와 ISTJ 차이는 없었습니다.




<간단 한 마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 축사에서 얘기한 세 가지 스토리 중에 “connecting dots”가 가장 마음에 와닿습니다.

혹시나 나머지 두 개는 뭘까라고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구글링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나머지 두 개는 “love and loss” “death”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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