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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라 Aug 26. 2022

6. 결말

소소한 개인사

대학 때 회계사와 세무사를 준비했다. 두 번째 치른 세무사 1차 시험에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객관식 한 문제만 더 맞았으면 합격이었다. 휴학을 안 한 상태로 치른 시험이었다. 버스로 이동 중 결과를 전화기로 들었다. 한번 더 시험을 보느냐 마느냐의 상황. 나는 결심했다. 신이 있다면 한 문제 차이 탈락은 ‘나에게 자격증 공부를 하지 말라’는 신호라는 걸. 그래서 뛰어든 게 언론사 기자다.


90년대 후반 필자가 다닐 당시만 해도 대학에는 언론고시반이 여럿 있었다. 언론사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서다. 4학년 1학기였기 때문에 언론고시반은 들어가지 못했다. 세무사도 안 됐으니 사시, 행시, 외시(지금은 없어짐) 등 고시는 엄두도 못 냈다. 그렇게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 IMF 시절이어서 취업난은 극심했다. 필자 학과 정원이 40명이었는데 당시 졸업생은 32명이었다. IMF 취업난으로 휴학을 대거했기 때문이다. 32명 중에도 대략 5명 이상은 대학원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학교 내 채용게시판(당시만 해도 온라인 취업정보는 없었다. 대부분 대학 행정파트가 있는 건물 채용지원과 벽면에 채용공고가 붙어 있었다)을 우연찮게 보니 기자 모집 공고가 있었다. 채용 공고가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합력을 크게 기대를 안 했다. 그게 9월 말 10월 초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IMF 시절이어서 채용 공고가 많지 않아 필자가 원서를 낸 곳도 대기업 한두 곳에 불과했다. 언론사 합격에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서류가 통과됐다.


어찌 된 것인지 회사에서는 필기를 안 보고 바로 면접으로 들어갔고 여기서도 통과됐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필자가 제대로 된 첫 번째 면접이어서 많이 떨렸다. 근데 3명이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가운데 앉은 사람이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이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것이었다. ‘아니 저렇게 긴장할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면서 필자는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첫 질문이 셋 중 마지막이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응시자 모두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자신감 없게 대답했다. 나는 튀어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질문은 답변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답이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목소리를 높였는데 어찌하다 보니 답변도 그럴듯했던 것 같다. 큰 의미는 없는데 목소리가 크니 그럴듯해 보였던 것 같다.


5일인가 후 필자 생일날 학교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합격’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내가 기자가 되다니. 당시 필자 학과에 취업 준비생이 20여 명 있었다. 그 가운데 필자의 학점은 바닥 수준이었다. 게다가 자격증 준비하느라 학업에 충실하지 않아 교수님과의 관계도 썩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 취업됐다고 얘기하자 모두가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학생이 제일 먼저 취업됐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때부터 학교를 제대로 가지 않고 교수님과 조교에게 취업됐다는 얘기를 전하고 직장 생활에 들어갔다.

수습생활 3개월은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동기 일부는 이미 타 매체에서 수습을 거쳤고 또 일부는 직장생활을 하다 왔다. 필자는 언론고시반 생활도 하지 않아 기사의 ABC도 잘 몰랐다. 정말 필기시험이 있었다면 필자는 100% 떨어졌을 것이다. 당해에만 필기시험이 없었던 게 필자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여하간 두 달간 연습에서 무진 혼났다. 기사가 안된다는 선배들의 꾸지람도 많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나를 어찌하랴. 한 달 부서 로테이션 후 국제부로 발령 냈다. 역시 기사 작성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부는 외국대사관 이외에는 취재할 일이 거의 없었다. 여기자가 많았고 이들은 외근을 즐기질 않아 필자는 열심히 외부 취재를 도맡았다. 결국 이후 산업부로 배치됐다.


11월에 첫 출근했고, 그해 12월 크리스마스이브가 생각난다. 그날도 늦게까지 마감하고 기자 동기와 회사 근처 소머리국밥집에서 소주에 저녁을 먹었다. 그때 무척 대학생활이 그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4학년 가을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대학 캠퍼스에서 세무사 시험을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게 맞는지 또 IMF 시절 취업은 잘 될지 혼자 고민하던 게 그리웠다. 캠퍼스 숲 그늘나무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며 고심하다 잠들고 일어나곤 했다. 그때가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게 크리스마스이브에 갑자기 떠올랐다.


여하간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기자와 홍보인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과연 나의 직장생활을 후회할까? 아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중반까지 기자는 정말 최고의 직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우를 받았다. 연봉은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맞벌이여서 그런지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2000년대 중반부터 언론 환경이 급변하면서 홍보로 전직을 하게 됐지만 그래도 기자 직종을 후회하지 않는다. 기억이 생생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광고국에서 전화가 오곤 했다. “광고국장님이 기자에게 직접 전화해 기사 부탁을 하라고 들었다”는 광고국 직원의 얘기였다. 이런 전화가 왔을 당치 초창기(2005년 이전)에는 제대로 응대도 안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데스크(부장)가 광고국 요청 자료를 처리하라고 지시를 했다. 당시 데스크와 저녁 술자리에서 논쟁도 했었다. 당시 데스크가 한 말이 기억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사실 충격이었다. 그 말을 한 데스크는 이후 곤욕을 치렀다. 후배들은 회사 눈치만 보는 선배라고 혹평을 해서다.


이런 시간을 어느 정도 보낸 후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광고국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기자는 회사를 떠났다. 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도 있었고, 사업에 뛰어든 선배도 있었다. 교수가 된 분도 있다. 지금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당시만 해도 언론사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꽤나 많아서 인 듯하다.


몇 년 후에는 광고국에서 하는 행사에도 데스크들이 차출됐다. 광고국에서 주요 광고주(기업체)를 부르는 행사에 기자를 통솔하는 데스크가 들러리로 나가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여하간 필자는 그 회사에서 데스크 직전에 홍보직으로 이직했다. 동기들 가운데 능력 있는 친구들은 승승장구했다. 가끔 생각한다. 나도 과연 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여하간 홍보에서 4년을 재직 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기자로 컴백했다. 홍보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두 번째 기자생활은 적응을 잘했다. 무엇보다 매일 다시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민간회사 시절 팀장이었던 필자는 매일 팀원들을 보고 다독이고 때론 꾸짖는 게 편치 않았다. 그냥 업무만 보면 좋으련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필자도 욕심이 있다 보니 팀원들에게 얘기가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불편한 사람도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 본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매일 보니 서로 참 불편했다.


정리


기자와 홍보 모두 좋은 경험이다. 많이 듣는 얘기지만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게 ‘기회 있을 때 안 해본 것’이라고 하지 않나.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잡았었다. 만족도 하고 후회도 했다. 이런 세상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자가 적성에 맞다고 해서 다시 언론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던지 분명 이 기간은 살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을 분들이 기자 지망생 또는 전직을 생각하는 기자들로 생각된다. 기자는 분명 멋진 직업이다.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건 크나 큰 기회다.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 본인의 기사가 반향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자 출신으로 홍보직도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를 가장 잘 아는 게 기자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에 본인이 높은 연봉을 원하고,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날마다 출근하는 것이 괜찮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직업에 분명 귀천은 없다. 하지만 기자는 매력적이다. 기자를 하다가 홍보맨으로 바꾸는 것도 능력을 발휘하면서 또 다른 삶을 산다는 측면에서 무시 못할 일이다. 필자는 만족한다. 이글을 보며 고심하는 독자들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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