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번역의 문제
1. "믿거나 말거나, 독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책이 나로 하여금 읽기를 멈추게 하는 순간입니다. 글이 너무 능수능란하거나 나를 흔들어 놓을 때,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읽기를 멈추고 나 자신을 추슬러야 할 때,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 Jonathan Edward Durham
2. 대개 "책이 나로 하여금 읽기를 멈추게 하는 순간입니다"보다는 "책을 보다가 읽기를 멈춰야 하는 순간입니다"가 더 나은 번역이라고들 한다. 이에 대해 나는 두 번의 '소소한 전회'를 거치며 위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번역을 고수하게 되었다.
3. 첫 번째는 영문법과 담화 공부의 결과이다. 영어 화자들의 언어습관 속에서 'the book'이 주어로 쓰이는 소위 '물주구문'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고민 끝에 이러한 패턴은 해당 언어가 담은 문화의 단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번역에 담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어떤 맥락에서는 제법 정확한 선택이라 여기게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이 주류 의견이지만, 개인적이고 비공식적인 번역에서는 물주구문의 구조를, 그리하여 그것이 담고 있는 행위의 벡터를 그대로 유지하곤 한다.)
4. 두 번째는 사회문화이론, 신유물론, 인공지능 등을 공부하면서 비인간 주체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된 후 생긴 변화이다. 인간이 톱과 망치를 사용할 때 다른 신체의 움직임을 취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행위자성에서 말미암지 않는다. 톱질을 할 때의 전후 왕복운동과 망치질을 할 때의 상하 반복운동의 차이, 운동 속도의 차이, 두 도구의 사용에 있어 상이한 근육의 사용, 사뭇 다른 대상-신체 협응 패턴 등은 사물들의 '완고한' 존재, 거기에서 나타나는 행위자성, 그것이 인간과 얽히는 과정에서 말미암는다. 사물은 인간의 행위를 조건짓고, 가이드하고, 가로막는다. 그리고 때로는 반격에 나서기도 한다.
5. 이런 면에서 "the book"을 주어로 하는 문장을 만났을 때 책의 행위자성을 유지하며 번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6. 물론 이 모든 것은 일종의 '환상'과 언어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내가 환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행위의 주체성과 도구성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안경으로 글을 겨우 읽는 사람의 읽기 행위에서 주체와 도구가 명확히 구분되는가? <To Rome with Love>에서 우스꽝스레 그려졌던 '샤워 부스 안에서만 발현되는 가창력'에서 샤워부스라는 공간-적절한 온도의 물과 수증기를 맞으며 존재하는 몸'은 노래하는 능력과 분리될 수 있는가?
7. 그런 면에서 시간 위에 하나하나 던져지는 단어의 연쇄로 구성되는 언어는 다면적이며 역동적인 물리적+심리적+개념적 현실의 프록시일 뿐이다. 언어가 드러내는 주체성, 도구성, 대상성, 피동성 등등은 현실을 묘사하고 설명하고 어느 정도 구성하지만, 그것은 현실 자체가 아니다.
8. "믿거나 말거나, 쓰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쏟아지는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쓰기를 멈추게 하는 순간입니다. 이 우주가 미치도록 능수능란하거나 휘몰아치는 생각들이 나를 흔들어 놓을 때, 왈칵 달려드는 기억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쓰기를 멈추고 나 자신을 추슬러야 할 때,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언어는소통의도구가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