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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Mar 17. 2023

당신은 타자에 빙의하여 당신의 영어를 듣고 있다

우리 안의 언어인종주의에 대하여

1. 혹시 자기 발음을 녹음해서 들어보거나 자신이 말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서 '아 발음이 왜 저래. 정말 마음에 안든다. 네이티브 발음 되려면 멀었어. 에휴.'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더 심하게는 '내 발음 구려서 못 듣겠다.'고 생각하신 적은요? 


2. 이때 우리는 "내가 말한 것"을 "내가 듣고", "내가 판단해서", "내가 부족하고 부끄럽다고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상적으로는 자신이 한 말을 자신이 평가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인종언어주의 이데올로기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백인 '표준'영어 사용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영어를 듣고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사진: Unsplash의Ben Sweet


3. 그런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요. 타인의 외국어 발음을 폄하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전혀 해당 언어의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아요. 한국의 상황을 예로 든다면, 한국인의 억양이 그대로 담긴 영어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영어발음을 '구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경우 판단의 주체는 '한국인 영어 화자'라기 보다는 '백인 영어 청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다시 말해, 그들은 알게 모르게 주입된 이데올로기 하에서 백인, 그 중에서도 소위 '표준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 주체가 되어 외국어 학습자의 언어수행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5. 이것이 인종언어 이데올로기의 힘입니다. 그런 이데올로기를 체화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 특징이 있어요. 입은 자신의 입인데 귀는 '고귀한' 백인의 귀거든요. 


6. 은희경 작가의 소설 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인종언어 이데올로기를 생각하면 이 소설 제목이 떠오르곤 해요.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신이 아름답지 못한 나의 발음을, 문장을, 발화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백인 청자가 되어서 아름다울 것도 추할 것도 없는 나의 언어를  멸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6. 결국 우리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다보며 무시하고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산업과 미디어, 교육체제가 우리에게 심어준 '권력의 자리'에 대한 미련과 동경으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겠지요. 


7. 저는 제가 타자에 빙의하여 저 자신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언어권력 위계의 정점에 자신을 앉히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아요. 거기에 오를 필요도 없고, 오르려 한다고 그들이 인정해 주지도 않고, 올랐다고 해도 누군가를 낮잡아 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냥 자신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그런 자리에 대한 동경은 위계와 불평등을 지속하고 악화시키니까요. 


8. 그러고 보면 이게 외국어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책에 찬성하는 것, 집 없는 사람이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부동산 정책을 판단하는 것, 생의 굴곡으로 인해 학력자본을 취득하지 못한 이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학력자본을 취득한 이들의 권력을 치켜세우는 것... 모두 비슷한 일들이니까요. 


9. 결론적으로, (1) 아름답지 못한 언어로 마땅히 천대받아야 할 자신과 '아름다운 영어를 쓰는 백인'에 빙의하여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는 자신'으로 굳이 자아를 쪼갤 이유가 없어요. 그냥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대단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자신으로 살아가면 족해요. 


물론, 우리를 '추하다'고, 우리의 발음을 '어글리하다'고 부르는 체제에 저항하면서 말이죠. 


#raciolinguisticideology #강의록 #사회언어학 #빙의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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