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하여
(영어교육과정 마지막 시간에 학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1. 어떤 수업에서 해당 교과'만' 가르칠 수 있을까요? 영어교육을 한다고 해서 '영어'만을 다룰 수 있을까요? 아니, 영어'만'이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말은 인간과 사회, 기술과 문화, 경제와 정치와 늘 엮여 있지 않던가요? 그 엮임이 끊겼을 때 그걸 '언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요.
2. 만약 영어'만' 가르치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학생들이 어떤 수업을 경험하도록 교과를 디자인해야 할까요? 소통법을 배우는 수업이 아니라 소통의 방법을 바꾸는 수업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시 말해, 세계를 반영하는 수업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수업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교육이 사회구조를 재생산한다는, 이제는 진부하게 들리는 '상식'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단어를 바꾸고, 문법을 바꾸고, 말의 순서를 바꾸고, 은유를 바꾸고, 목표를 바꾸어 나갈 때 아주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3. 저는 Jerome Bruner가 말하듯 교육은 지금 당장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기 보다는 가능한 세계들(possible worlds)를 다루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의 말에 기대어 교육을 아래 세 가지 요소로 보곤 합니다.
교육의 세 가지 요소
(1) 지금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그것들은 어떻게 지어져 왔는가.
(2) 어떤 세계가 가능한가. 무엇을 꿈꿀 것인가.
(3) (1과 2를 잇는 요소로서)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물론 이 세 영역은 긴밀히 엮여 있습니다. 구분하기 쉽지 않을 때도 많고요. 하지만 이렇게 개념화해 볼 때 지금 우리 사회의 교육에서 무엇이 요구되는지 좀 더 명확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한 학기 교육과정을 공부하며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요? 여기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 교육과정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교육과정에서 출발할지라도 나와 학생의 몸을, 교실이라는 시공간을, 지금 우리 사회가 담고 잇는 다양한 문제들을 관통하면서 완전히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5. 정답이 아니어도, '가장 빠른 길'이나 '최소환승구간'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함께 걸어갈 그 시간이, 그 길에서 나눌 대화가 우리를 변화하게 할 테니까요. 교육을 통해 어떤 목적지에 최대한 빨리 닿아야 한다는 선입견을 벗어 던지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고, 서로의 마음에 더 깊이 스밀 수 있을 테니까요.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6. 그래서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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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영어교육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