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광고 리뷰 06. 빼빼로
저는 예언가입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길고 아름다운 과자들이 전국의 편의점들을 정복할 것입니다. 입에 무언가 긴 것을 물고 돌아다니는 커플들이 눈에 띌 것이고, 과자 하나 때문에 기쁘고 슬프고 분노가 치밀고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옷을 따뜻하게 입은들 옆구리가 시릴 것이고 쓸쓸할 것입니다. 자존감은 땅 아래로 뚝 떨어질 것이고,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쌍쌍바 같은 것(?)들에게 저주를 퍼붓게 될 것입니다. '그래! 커플 따위 필요 없어, 가족이 짱이지!'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부모님 역시 커플이라는 충격적이고도 가슴 한편이 아득히 아려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방에 들어가 꺼이꺼이 울 것입니다. 이것은 예정된 미래입니다. 미래는 개척해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운명일 뿐...
봄에는 노래 벚꽃엔딩이 관을 박차고 나온다면 가을에는 빼빼로가 좀비가 되어 살아 돌아옵니다(?)! 많은 커플들에게는 행복을, 솔로들에게는 눈물을 주는 빼빼로. 물론 빼빼로가 커플만을 위한 과자는 아니지만... 아니 빼빼로는 원래 친구들끼리 주고받던 날이었는데 어느새 커플들의 전유물이 돼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우에에엥
으음... 하여간 이번에는 빼빼로 광고를 리뷰해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vFEZM7GYAg
일단 이번에 나온 광고의 구성을 살펴볼까요? 일단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로 시작합니다. 11월 11일은 빼빼한 날!! 을 힘차게 외쳐주고 그 이후로는 와아아아아아ㅏㅏ아아아아앙ㅇ아아. 소독차 쫓아다니는 아이들처럼 빼빼로 들고 셀카봉 따라다니면서 와아아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 이후에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서로 과자를 나누어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특별한 크리에이티브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성의가 없는 것은 아닌, 무난한 광고를 만들어냈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빼빼로를 선물함으로써 행복하고 즐거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도 어색하지 않게 잘 녹여냈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밝고 긍정적입니다. 조명도 따뜻한 색감이 나도록 연출했고 화면 안에서의 제품도 눈에 잘 띄네요. 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똑같은 메시지, 똑같은 구성은 아쉽습니다.
아 모르겠고 그냥 신나해(이미지 출처 : LotteCF 유튜브)
살짝 자잘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카카오T에서도 내레이션에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빼빼로 광고 역시 내레이션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돌 콘서트 같은 곳을 보면 함성소리 때문에 음악이 안 들리잖아요? 빼빼로 광고도 역시 함성소리에 내레이션이 수장되고 말았네요. 사람들은 화면과 소리가 일치하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화면에서는 엑소와 그 주변 인물들이 산만하게 빼빼로 들고 정신없이 흔들어대고 있는데 그것과 싱크가 맞는 '와아아아아' 소리만 들리지, 혼자 외로이 놀고 있는 내레이션에는 집중이 잘 안 될 겁니다.
빼빼로에게는 정말로 든든한 빽(?)이 하나 있죠. 바로 그 날, 빼빼로데이입니다. 지방의 한 여학교에서 소박하게 시작된 것에 롯데제과의 마케팅이 더해져 어느새 전국적으로 퍼지더니 성탄절처럼 거대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빼빼로데이를 포함하여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가 흔히 우리나라의 3대 데이라고 불리는데, 그중에서도 길고 빼빼하게 생긴 과자의 날이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최강자 자리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초코와 사탕은 감히 그분의 용안을 올려다볼 수 없습니다.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든든한 빽이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두려울 것이 없을 텐데, '11월 11일은 그 날이니까 빼빼로를 사세요!'라는 단순 명료한 메시지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쯤부터 빼빼로 광고에 선물이라는 메시지를 정확히 담기 시작했고, 올해 광고에도 어김없이 빼빼로는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수단임을 어필했습니다. 사실 가볍게 사 먹는 과자나 음료수에 너무 진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너무 B급으로 몰고 가는 것도 제품이 장수하는 데 있어서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빼빼로는 이미지 메이킹을 너무 잘했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지 않은 적절한 수준의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가볍게 전하는 나의 마음'으로요.
빼빼로를 주로 구입하는 층은 10대 중학생, 고등학생입니다. 낙엽이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 순수한 나이, 그들은 안타깝게도 돈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지갑은 텅텅 비어있고, 그때 빼빼로가 눈에 들어온다면? 부담 없이 1200원짜리 빼빼로를 집어 들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전한다', '빼빼로는 10대가 주 구매층이다', '빼빼로는 비싸지 않다'와 특정한 날을 기념하여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 시장 조사가 굉장히 잘 맞물렸습니다. 빼빼로를 사야 할 명분이 너무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케팅팀에서 일을 굉장히 잘 했나 봐요.
무려 4년 전통에 빛나는 메시지 '소중한 사람에게 빼빼로를'(이미지 출처 : LotteCF 유튜브)
광고를 보고 처음 느꼈던 것은, '빼빼로 광고는 그렇게까지 내용에 큰 공을 들일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빼빼로는 긴 과자에 초콜릿을 입힌 막대과자 제품군 중 가장 유명하고 익숙하고, 점유율도 굉장히 높습니다. 게다가 그 제품을 기념할 만한 어느 날까지 존재합니다. 모두가 알고 기억하고, 기념하고, 어느새 빼빼로를 손에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게 됩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그 날에 맞춰 빼빼로를 사들이는데, 광고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러면서 광고의 목적은 자연스럽게 단순해집니다. 다시 한번 빼빼로데이가 다가옴을 알리는 것뿐. 광고가 그렇게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광고에 넣을 메시지까지 딱 완벽하게 정해져 있는데, 광고에 굳이 힘을 쏟을 필요가 없습니다. 빼빼로는 늘 해오던 대로 하면 됩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네요! 2013년에는 빼빼로를 통해 공익사업을 알리는 내용으로 조금 색다른 광고를 했지만, 14년도부터 지금까지 4년간 광고 내용이 딱히 변한 건 없습니다. 앞으로도 광고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내년 광고도 똑같이 나오지 않을까요? 동일한 내용, 메시지로 말이지요. 매년 똑같은 것이, 타임루프물 같군요.
달라진 건 세월뿐. (왼쪽 위부터 Z순으로 2014, 2015, 2016, 2017년도 광고, 이미지 출처 : LotteCF 유튜브)
광고 자체는 모나지 않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서는 똑같은 내용을 담은 광고가 조금 아쉽습니다. 조금씩이라도 메시지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광고는 이리저리 내가 그냥 가는 대로 메시지를 정하고 막 만드는 것이 아니죠. 광고는 제품의 인지도를 올리고 판매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가진 비즈니스의 영역입니다. 계속 똑같은 콘셉트로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고, 다른 방향이 필요할 것 같다면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광고의 내용이 너무 똑같아 아쉽지만 빼빼로 광고는 아직 노선을 틀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품은 잘 팔리고 있고 빼빼로데이는 아직 건재하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빼빼로가 수명이 다해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 광고를 어떻게 만들어낼지가 굉장히 궁금합니다. 판매가 달라진다면 그에 따라 광고도 달라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날이 오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