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지금 몇 명의 여행자를 덮어줬을지 모를, 퀘퀘한 침대보에 얼굴을 처박고 끙끙대고 있어. 무려 블루모스크를 눈 앞에 두고.
왜 갑자기 배탈이 나고, 또 열이 오르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아마 이틀 전에 숙소를 옮기며 소나기를 쫄딱 맞아서 그런걸까? 소나기가 정말 잠깐이긴 했는데, 24인치 캐리어를 들고 트램을 오르고 내리려니 배로 서럽긴 하더라고.
내가 이번 여행에서 이스탄불에 배정한 시간은 5일 정도야. 이스탄불이 큰 도시이긴 하지만, 5일 정도면 중요한 랜드마크에서 인증샷 정도는 남길 수 있거든.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곳에 오자마자 컨디션이 계속 나빠지더라. 그래서 뭘 제대로 즐긴 게 없어. 이제 귀국은 겨우 48시간 남았는데, 억울해서 눈물이 나.
아무튼, 침대에 누워 있으니까 별로 할 게 없네. 지금 내가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은 아파하거나, 잠자는 것 뿐이야. 그나마 가끔 정신이 들면 '한국 돌아가면 이제 어떡하지' 하고 걱정을 하는데 힘을 쏟고 있어. 너가 들으면 펄쩍 뛰며 호들갑을 떨 일이지.
치앙마이에서 너랑 싸구려 버킷 모히또를 마셨을 때가 생각나.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너를 졸라 올드타운에서는 나름 핫하다는, 스테이지가 딸린 펍에 갔던 그 날 말이야. 그 때 내가 두 번째 버킷을 비우면서 비슷한 얘길 했잖아. "나 너무 불안하다"고. "한국에 가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너가 그랬지: "모니야, 나를 봐! 나는 아예 다시 새로 시작하고 있잖아."
"너는 경력도 있고 면허도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어!"
"그런 너가 불안하면 나는 어떡하라고. 너 잘 하고 있어. 걱정하지마." 버킷 칵테일을 사이에 두고 너가 내 손을 꼭 잡았잖아.
그 때는 웃고 넘겼는데,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맴도는 것을 보면 그 말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나 봐. 옆에서 그렇게 말해주는 너가 있어서,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이 행복하게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이렇게 말하니 되게 오래전 같다. 따져보면 고작 보름 전의 일인데.
있잖아. 생각해 보니, 내가 이렇게 아픈 건 이틀 전에 맞은 소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도망쳐 온 곳에서 자꾸 도망나온 곳에 대해 생각해서 벌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싫어서 떠나왔으면 즐기기나 할 것이지. 몸은 여기, 정신은 바다 건너에 있으니 오죽하겠어.
아무튼, 이럴땐 옆에서 정신 없이 으쌰으쌰 해 줄 너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빨리 한국 가고 싶다.
* 병원 밖으로 나온 간호사 ; 전 간호사, 현 마케터의 탈간호 후 격한 방황기 및 두 번째 신입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