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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Oct 27. 2015

지나간 시간 스쳐간 사람들

스치듯 지나간 우리들의 시간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어른들은 왜 항상 연락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을까

다들 그 긴 세월을 살면서 만난 친구들이 많을 텐데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좀 더 자랐을 때 깨달았다

어른이 되면 다들 가족을 책임지거나 먹고살기 바쁘고

만날 여유도 없고 자주 보지 못하다 보니 

사는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서로가 낯설어지고

점점 인간관계는 좁아져서 결국 몇 사람만 남는가 보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실 모든 것은 핑계였고

그냥 그 많던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렇다고 멀어진 그들이 나쁜 것도 싫은 것도 아니다

더 이상 좋지 않았거나 혹은 좋으려고 애써야만 좋을 수 있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저 나와 많이 달랐을 뿐,

달라도 이해할 수는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을 뿐,

우리 탓이 아니라 나빠진 상황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좋은 상황 속에 가려 보지 못했던 

연약하고도 잔인한 우리를 그때서야 마주했을 뿐,

그 뿐이었다


뚜렷한 계기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동안 억지로 담고 또 담다가 이제야 넘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애써 큰 그릇인 척했지만 내 그릇은 작았다.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 다 담지 못한 것이다. 나의 한계였다

슬프게도 내 그릇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다들 점점 둥글둥글해지고 있을 때

나는 점점 모나고 못나지고 있었다


직면해야 할 때일수록 그 순간을 회피하고 있었다

진심을 다하는 게 진리임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대하면 대할수록 손해만 보는 것 같아 서러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먼저 떠나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몸도 마음을 따라 멀리 떠났다


안부를 전하는 것을 의무처럼 여기던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안부를 묻지 않는 이상 먼저 전하지 않았다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비위를 맞추는 법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좋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애써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되돌려 놓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그 상태로 둘 생각이다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진다. 나란하던 삶의 어깨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일이 생겨서라기보다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맞았다가 안 맞게 되었다기보다, 조금씩 안 맞는 마음을 맞춰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쪽이 싫기 때문이 아니라 저쪽이 편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면 서로 속내를 펼쳐 보이는 대신 겉돌고 맴도는 이야기만 하다 헤어진다. 삶이 멀어졌으므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한 채 멀어진다. 실망과 죄책감이 찾아오지만 대단한 잘못을 한 건 아니므로 쉽게 잊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어느 날 무심하고 냉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새삼스럽게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와 버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둘 중의 하나_황경신, 월간 PAPER 中



수년을 알고 지낸 이보다 여행길에서 잠깐 스친 이가 나를 더 잘 이해할 것 같았고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보다는 그 누구든 아무것도 나에 대해 몰라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또한 나에 대해 진심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바란다. 그래서 실망한다

사람을 믿지 않기로 해놓고, 

누구에게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사람에게 기대려 했고 바라고 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두 내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늘 외로웠다


비로소 우는 걸 감추고 웃는 법을 터득한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잠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면서도 만약 다시 돌아간대도 그 선택을 바꾸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지

바보 같은 생각을 자주 하는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모두들 나와 같은지

나만 그런 건지 당신도 그런 건지

원래 사람은 다 그런 건지 시인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인 건지

정말 언젠가는 이 또한 다 지나가고 별 일 아닌 일이 되는 건지

그날은 대체 언제 오는 건지

어리석은 질문인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묻고 싶다


계속 시간은 흐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지나 갈 것이다

언제쯤 만남과 이별 모두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시간과 사람은 영원히 내게는 낯설고 어려운 것일까

얼마나 더 보내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젊고 서툴러서

아직 너무 젊어서 그런 거면 좋겠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시간도 사람도 낯설다면

그때는 어떤 핑계로 나를 위로해야 할까


떠나간 이들 떠나보낸 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곁에 있는 이들

고맙거나 미안하거나

미안하고 고맙다


그리고 문득보다 자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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