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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Sep 30. 2015

조금 느려도 괜찮아

속도보다 방향이니까

뭐가 그렇게 급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바로 ‘빨리 빨리’다. 

밥도 빨리 먹어야 하고, 유행도 빨리 따라가야 하고, 출근도 빨리 해야 한다. 물론 퇴근은 예외다.     


나도 빨리빨리 문화 때문에 현기증을 느낄 때가 있다. 유년시절 기억 중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사소한 일들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술시간. 성격이 급한 편에 속한 나는 이상하게 미술 시간에는 느렸다. 스케치가 남들보다 한참 느렸고, 결국 색칠도 늦어질 수밖에. 선생님은 잘 그리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느려 터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간 내에 빨리 그렸어야지. 결국 미완성된 그림을 내는 나는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반의 1/3을 제외한 아이들은 패배자였던 것 같다. 선생님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 시간은 45분이 아니라 다른 시간보다 더 길었어야 했다.      


그리고 급식시간. 편식도 안 하는 편이고 밥도 빨리 먹었던 나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 반에 한 여자아이가 밥을 굉장히 늦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그 아이는 주의를 들었고, 친구들도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결국 시간이 좀 지나자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 아이는 늘 혼자 남아서 밥을 먹었다. 우리에게도, 그 애에게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아이가 너무 느린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말이다.      


더 무서운 건 ‘빨리 빨리’에 적응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다. 뭐든 빠르게 해치우는 게 정답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다. 조금만 느려도 걱정되고 답답하고, 심지어 화가 날 때도 있다. 어쩌다 이렇게 급해졌을까.      


‘빨리=신속’일지 몰라도 ‘빨리 빨리=조급’     


뭐든 적당히 빨리하면 신속한 것일지 모르지만, ‘빨리, 빨리!’ 너무 과해지면 조급한 것이 된다. 우리는 조급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음식은 맵고 뜨거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리 먹는 걸까? 어차피 야근인데 왜 이렇게 출근은 빨리하는 걸까? 아직 젊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한때 슬로푸드, 슬로시티 같은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웰빙’이 유행할 때는 모든 단어 앞에 웰빙을, ‘힐링’이 유행할 때는 죄다 힐링을 수식어로 갖다 붙인 것처럼 말이다. ‘슬로우’란 단어가 유행할 때 ‘우리가 지금 굉장히 쫓기며 살고 있고 그 부작용도 크구나’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유행도 빨리 사그라졌다. 결국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슬로우’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았던 거다.      


여유를 가져도 돼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여유를 가져. 여유 좀 부린다고 해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명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여유 부려서 언제 시작해? 언제 공부해? 언제 일해? 언제 돈 벌어? 언제 집 사? 언제 다 끝내?... 결국 이 물음의 다음은 언제 죽어?,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 숨을 쉬었지?’가 될 것만 같다. 섬뜩하다.      


멋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굉장히 추상적인데, 가만히 생각해봤다. 주관적일 수도 있겠지만 ‘여유 있는’ 사람보다 멋있는 건 없다. 여유 있는 자는 긍정적이고, 유쾌하고, 매력적이고, 또 진정한 승자다. 조급한 승자는 본 적이 없다.      


속도보다 방향이니까, 조금 느려도 괜찮아     


자꾸 조급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남과 비교하면서 불안해지기도 한다. 나만 느린 거면 어쩌지. 뒤쳐진 것 같은데 어떡하지. 왜 나만 더딘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이러다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아닐까?     


속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나보다 빠른 사람이 넘어질 수도 있다. 속도만 신경 쓰다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빠른 게 정답은 아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조급해지는 나를 다독여야겠다. 속도에 눈이 멀어 방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금 느려도 되니까, 제대로만 가자. 빨리 먹다 체한다. 천천히 먹자.     



그날이 그날 같은 

나만 그 자리에 멈춰서 있는 것 같은 날이 있다.     


단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 것뿐이다.

그 어느 누구와도 나의 성장 속도를 비교하거나 맞춰가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렇게 나아가며 자라고 있다.     


모든 꽃이 같은 시기, 같은 날에 피지는 않는 것처럼.

느리게 여행하기     


서제유_오늘이 너무 익숙해서(느리게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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