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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10. 2016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꿈, 견디기 힘든


                                                   황동규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은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의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이십대 후반이 되고 나더니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물론 원래부터 완전한 안정과 평온을 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요근래 유독 내 마음과 생각이 이상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꿈이 두려워졌다. 꿈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무거워졌다.


그래봤자 이십대면서, 꼴에 '후반'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봤자 겨우 몇 달, 몇 년 차이일 뿐인데 웃기고 앉아있는 그게, 바로 내가 될 줄은 몰랐는데.

마흔 넘은 어른들은 코웃음을 치고, 일흔 넘은 노인은 그저 빙긋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줄 일이겠지. 내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꿈보다 현실을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꿈을 이루는 그날을 상상하는 시간보다 지금 처한 현실의 막막함을 되새기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과거의 내가 이상주의자였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스스로가 현실주의자라는 것을 부정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도 모르게 현실도피자가 된 적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늘 이상주의를 경계하는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늘 꿈을 안고 나아가는 현실주의자라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꿈을 버거워하는 현실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속이 쓰리다.


이전의 내가 혹시 꿈을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해했다면, 지금의 나는 '꿈',  그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꿈을 두려워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게 버겁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또래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십대 후반이 아니더도 마찬가지였다. 스물둘이건 넷이건 여섯이건 후반이건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이십대는 확신이 없었고, 꿈이 없거나 혹은 꿈을 이루지 못할까봐 아니면 이제 그만 꿈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겪어보지 않았지만 서른이 넘어서도 다들 비슷한 고민을, 어쩌면 더욱 심화된 고민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다만 그때는 현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해져 있을지도 모르고,  불안을 느낄 여유조차 잃어버릴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미 꿈 하나를 접고 다른 꿈을 꾸고 있을 수도 있겠지.


띄엄띄엄 봐서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고 장면들도 희미하지만 이십대 초반에 봤었던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문득 생각이 났다. 제법 나이가 들어서 회사원으로 자리잡은 극중 인물이 과거 청춘 시절 꿈을 회상하면서 '그땐 그랬지'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 아련함이 묻어났지만 결코 슬픈 표정은 아니었다. 어쩌면 패기와 열정이 넘치고 꿈이 있었지만 지독하게도 불안해하며 방황했던 청춘 시절의 얼굴보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나름의 행복을 누리는 안정되고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십대 초반의 내가 그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앞부분 청춘시절의 내용들만 뇌리에 남아 정작 뒷부분 그 장면은  인상깊게 기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미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끊임없이 꿈을 이루는 내 모습만 상상할 때였으니까.


그런데  제목도 기억을 못하는 그 작품 속 그 장면이 왜 지금 생각이 난 걸까. 지금은 오히려 그 영화의 앞부분이 길고 강렬했다는 것만 기억이 날뿐, 뒷부분 그 장면 속 어른이 된 인물의 표정 외에는 다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아마 그 장면을 다시 본다면 무덤덤하기가 힘들 것 같다.


나는 아직 청춘이고 진짜 어른이 되려면 멀었는데 왜 벌써부터 패기를 잃어버렸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이런 생각 자체가 패기였으면 좋겠다. 자꾸 과거를 그리워하고 싶지 않다. 현재를 묵묵히 살아가면서 미래를 계속 기대하고 싶다. 꿈이 견디기 힘들더라도, 신분증에 채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무게를 감당해내서 기필코 토해내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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