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했던 시간
나의 20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도망치기 바빴던 것 같다.
결말이 보인다는 핑계로 시작도 하지 않고 돌아섰고
미움받는 게 두려워 솔직하지 못했다.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전부 꺼내보이지 않았고
버려질까 두려워 먼저 발을 빼버렸다.
열정을 다 바쳐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까 겁이 나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이루지 못할 꿈을 그리다 좌절할 내 자신이 안쓰러워
꿈이 없는 척했다.
이제는 정말 그런 게 있었나 싶게
내 꿈도
꿈을 꾸던 내 모습조차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라져 버렸다 흔적도 없이
이게 진짜 내가 원하던 삶일까
마치 도망치기 위해 살아온 것만 같아서
내 자신이 미워진다.
그냥 할 걸.
재지 말고
겁먹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지레 짐작하지도 말고
그냥 일단 저지를 걸, 왜 그랬을까 비겁하게.
도망치는 내내 할 수 있다는 말을
상투적이고 유치한 말로 치부하며 외면해왔지만
사실 알고 있다.
지금 누구보다 내게 필요한 말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나 영원히 필요한 말이
'너는 할 수 있다'란 말 한마디인 것을.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20대의 시간이 남아있다.
서른이 된 후에 돌아봤을 때
나의 20대가 도망만 치다 끝나버린 시간으로 남을지
비록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부딪혔던 시간으로 남을지는
앞으로 내 선택에 달려있다.
도망만 치다가 끝낼 수는 없다.
20대에 벌써 이렇게 비겁하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비겁한 인간이 되려고...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