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나는 나이에 비해 유독 철이 없었다. 뭐 철은 지금도 없지만... 생명을 집에 들이는데 필요했을 법한 깊은 고민이나 생각을 할 만큼의 정신 머리는 없는 사람이었다. 연두는 친구가 길에서 구조한 유기묘였고, 귀여웠다. 그게 다였다. 나는 그때만해도 완전 강아지파 였는데, 강아지를 매일 산책시키고 놀아줄 자신이 없어서 입양을 못하고 있었다. 털복숭이들은 귀엽지만 책임을 지기는 싫은 그런 사람이었다.
친구는 고양이의 장점을 이것 저것 알려주었다. 일본에서는 1인가구가 정말 많이 키우고 있으며 고양이는 자주 씻기지도 않아도 되고, 밥도 한통에 부어 놓으면 알아서 나눠 먹는다고. 화장실도 혼자 간다고(세상에나). 별로 챙겨줄 필요가 없어서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가 결정적인 부분이었다. 털복숭이고 귀여운데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고? 귀여운걸 보기만 해도 되고 큰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언니와 둘이 사는 꽤나 적당한 사이즈의 집이 있었고, 친구는 알레르기 때문에 연두를 맡길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상황과 여건이 맞물려 아무생각 없는 나에게 연두가 왔다.
연두는 이제 막 중성화를 마친 약 1살 된 자그마한 아이였다. 길에서 이상한 걸 주워먹어서 설사를 하고 있었고, 친구와 친구 어머니가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하고있는 상태였다. 보통은 많은 준비를 하고 반려동물을 맞이하지만, 나는 큰 준비를 하지 않았다. 강아지였다면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 많은 준비를 했겠지만, 난 고양이에게는 관심없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가져다 준 플라스틱 화장실과 털뭉치가 달린 긴 막대기, 작은 캣타워, 여분의 츄르와 사료 그게 연두의 전부였다. 가구도 없는 월셋방에 세를 들어온 하숙생 같이 연두가 우리집에 왔다.
친구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읽으면 좋다는 작은 책을 선물해줬다. 나중에 읽어보겠노라 했지만 대충 살펴보고 읽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알아서 큰다는 말만 믿었던 것이다. 친구 말처럼 연두는 알아서 잘 컸다. 연두는 다른 고양이 처럼 발톱을 써서 사람을 공격하거나 하악질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고, 순했다. 심지어 목욕도 잘했다. 밥먹는데 식탁에 뛰어들거나 사람 음식을 탐내지도 않았다. 깔끔한 성격이라 화장실을 매일 치워주지 않아도 알아서 대변자리 소변자리를 구분해서 분리를 해 놓았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일주일이 넘게 연두 화장실을 치워주지 않은적도 있다. 인정한다 철이 없었다.
연두는 그렇게 남의집에 얹혀사는 상경한 하숙생 처럼 혼자 잘 컸다. 귀찮은듯 시크하게 대량으로 부어 놓은 사료를 알아서 조금씩 나눠먹었고, 가끔 그릇에 물이 비는 불상사가 생기면 물그릇 앞에서 냐옹 냐옹 울었다. 그러면 나는 조금 귀찮아 하다가 빈 그릇을 보고 물을 갈아주었다. 연두는 가끔 밤에 울었다. 나는 짜증내듯 일어나서 연두에게 잠좀자자고 당부했다. 한달정도 반복되자 연두는 알아서 내 패턴에 맞춰서 밤에 잘 잤다. 연두는 정말이지 하숙생 처럼 우리집에 와서 자기 몫을 혼자 해내며 살았다. 연두는 화장실이며, 사료며 스스로 잘 챙겨 먹었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으니 자기 몫을 120% 다 하고 살았던 것이다.
연두가 언제 내 삶의 일부분이 되고, 하숙생에서 가족으로 거듭 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두는 그냥 귀여웠고, 애교가 많았고, 한없이 수더분하고 착했다. 내가 짜증내면 내 앞에 앉아 조용히 내 말을 들어줬고, 내가 아플때는 자기 밥그릇이 좀 비어있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같이 조용히 자줬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밥을 챙겨주면 그제야 배를 채웠다. 연두는 그런 아이였다. 세상에 이런 고양이는 또 없을 것 같은 그런 고양이.
요즘은 예전 철없던 고알못 시절이 자주 생각난다. 그 때 내가 짜증을 조금 덜 냈더라면, 연두 몸에 종양이 안생기지 않았을까? 그 때 내가 좀 더 좋은 사료를 골라 먹였더라면 연두가 조금 더 건강하지 않았을까? 그 때 내가 연두 화장실을 조금 더 자주 갈아줬더라면, 연두는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까? 스트레스가 암의 원이이라던데, 고알못인 내 눈치를 보다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몸에 종양이 생긴게 아닐까? 연두는 왜 그렇게 착했을까. 내가 너무 눈치를 보게한건 아닌지, 성질 더러운 내가 너무 내멋대로 고양이를 쥐락펴락 하려한건 아닌지. 자꾸 7~8년 전 철없던 내가 후회된다. 돌이킬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사람은 만약을 자꾸 떠올리는 존재다. 만약 연두를 처음부터 가족으로 맞이 했더라면...... 조금 늦은 후회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