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는 집밥을 먹지 않고 먼 길을 떠났다. 수술하는 날 아침에 굶겨야 한다고 해서, 아침밥도 못 먹이고 데리고 나왔는데, 밥 안 주는 게 더럽고 치사해서 고양이별 가서 배 터지게 먹으려고 했나. 아무튼 연두는 5월 15일 오전 1시 15분쯤 지구별 여행을 마무리하고 나로부터의 독립을 선택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해 연두. 존중하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멈춰진 작은 심장에 많은 기계 장치를 달고 눈을 뜨고 떠났다. 내가 손을 잡아주니 0이었던 심박수가 70으로 잠시 올랐다가 다시 0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약물 때문에 뛰는 거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냥 내 멋대로 내가 손 잡아줘서 뛰었다고 믿고 싶다.
수술 당일 아침, 밥그릇을 치웠더니 연두는 불만이 많았다.
연두, 네가 열심히 싸워준 건 알고 있어... 많이 아팠지? 미안해
떠난 당일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새벽에 아이를 데리고 배회하다가 집에도 잠시 들렀다가, 11시에 화장터 예약을 잡고 보내주었다. 동선이 어찌저찌 꼬여서, 화장터-집-화장터-집, 이렇게 두 번을 왕복하게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연두가 집에 들러서 3102일을 나와 함께 자던 침대에도 누워보고, 좋아하던 간식과 당근친구를 데리고 화장터에 간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염을 잘해주셔서, 염을 따로 할 게 없었다고 한다. 깨끗하고 예쁘게 갔다. 병원에서 수술부위가 안 보이게 잘 숨겨주셨는데, 수술부위를 볼까 하다가 굳이 눈에 담지 않았다. 그래서 연두는 그냥 내 옆에서 항상 그랬듯, 자던 모습으로 갔다. 언제나 그랬듯 예뻤다. 곱디고운 내 아가.
집에 들러서, 연두를 잠시 침대에 눕히고는 같이 누워있었다.
여행 떠나기 전 모습도 예쁘다.
연두에게 투정을 부려보았다. 그래도 사랑해.
연두를 보내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루세떼 스톤을 했다. 루세떼 스톤은 디폴트 값이 연두색이라, 왠지 연두의 연두색 같았다. 화장을 하고 스톤을 만드는데 장작 7시간이 걸렸다. 이 모든 걸 혼자 해냈다. 혼자 해내야 했다. 우리는 항상 둘이었기 때문에, 연두는 다른 사람이 집에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어도 둘이 해내야 했다. 연두와 나. 이렇게 둘이.
집에 와서 연두스톤을 연두가 가장 좋아하던 창가에 두었다. 항상 햇살을 맞던 그곳에서, 매일 아침 좋아하는 햇살을 실컷 맞을 수 있도록 창을 열어줄 생각이다. 감사하게도 강원도 횡성에 수목장을 마련해주신다는 분이 있어서 일부는 해 잘드는 그곳에 가져다 두고, 일부는 여기에 계속 둘 생각이다. 연두도 예전에 방문했던 곳이라, 낯선곳이 아니니 좋아하겠지? 고양이 별에도 해가 좋을까? 연두는 햇살을 좋아했는데, 고양이별 기숙사가 볕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하면 좋겠다.
아침마다 연두는 창을 열어달라고 했다. 겨울에는 열어달라고 했다가 추위에 놀라서 내려왔다. 이제 연두에게 계절은 봄만 남았다. 이제 춥지않아 다행이야 연두.
연두가 좋아하던 햇살 자리에 연두대신 연두 스톤을 두었다.
연두스톤을 연두가 좋아하던 자리에 두고, 집안정리를 시작했다. 수술하고 돌아오면 쓰라고 사준 새 스크레쳐와 상자들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버릴까 하고 재활용장에 나가보니, 수술 전에 버린 예전에 쓰던 스크레쳐와 상자가 아직 수거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연두, 너는 짧은 순간에 엄청난 선택을 했구나. 재활용이 채 수거가 안 되는 그런 짧은 찰나의 선택이었어. 나는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너의 선택을 존중해.
다음날 아침에는 연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연두 이동장을 챙겨주지 못해 연락드린다고, 나도 모르게 가지러 간다고 했다. 그거 가져와서 뭐 할 건데? 어차피 버려질 물건이지만 내손으로 버려주고 싶었나, 병원이 가깝지도 않은데... 나도 내 의식의 흐름을 모르겠다. 병원에 들러 이동장을 받아왔다. 이동장이 너무 가벼워서 현타가 왔다. 연두는 약 7킬로의 거대한 고양이였기 때문에, 연두가 없는 연두 이동장은 너무 가벼웠다. 이동장안에는 연두가 좋아하던 못난이 친구와 연두에게 잘 어울리던 핑크색 하네스가 있었고, 연두는 없었다. 선생님들께 인사드릴까 하다가, 눈물을 멈출 방법을 몰라서, 그냥 돌아 나왔다.
집에 와서 연두의 고양이별로의 이사를 기념하기 위해, 자장라면을 끓였다. 무려 채끝트러플쨔술랭. 이사하는 날은 원래 자장면을 먹는 건데, 나는 자장면보다는 자장라면을 좋아해. 연두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장라면을 열심히 먹어주었다. 연두를 보내고 첫 끼니였다.
연두를 보내고 먹은 첫 끼니, 연두의 고양이별로의 이사를 기념하여 자장라면을 끓였다.
이제 이 집에 연두는 없다. 나와 연두 스톤만 남았다. 연두는 말이 많았지만 연두스톤은 말이 없다. 내가 말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연두는 기막히게 타이밍에 맞춰 대답을 잘해주고, 자기도 말이 많았는데... 집이 조용하다. 뭐 그래도 나는 꿋꿋이 연두 스톤에게 말을 건다. 대답이 없어도, 연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으니까.
연두를 보내주는 일은, 의무 같은 것이었는데 그래서 해냈는데, 집에 있는 연두 물건을 보내주는 일은 선택이라 어젯밤에는 현타가 왔다. 반려동물의 죽음이란 반려동물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과 사료를 쓰레기통에 넣는 선택을 해야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두의 "두"자를 따서 "DoDo"라고 이름을 새긴 연두 식판은 이제 주인을 잃었다.
주인 잃은 짐들, 고양이별 연두에게 보내주고 싶지만 주소를 모른다.
이 브런치스토리도 주인을 잃었다. 연두가 생각보다는 오래 지구별에 남아줄 거라고 생각해서, 연두의 투병기를 담으려고 승인을 받았는데, 이제는 연두 없는 연두브런치, 앙꼬 없는 찐빵, 홍철 없는 홍철팀이 되어버렸다. 고민을 좀 했지만 그래도 브런치에는 연두 이야기를 계속 담아볼까 한다. 연두가 폐암이 있는 고양이 치고는 굉장히 오래 살았고, 증상도 하나도 없었던 특이 케이스였기 때문에, 연두의 과거 이야기를 기록해 놓으면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건 또 현재의 내가 해내야 하는 몫이고... 또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연두를 기록하는 건 나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연두의 종양을 처음 발견해주신 산내마을동물병원 원장님,
연두의 종양을 처음부터 분석해주시고 고민해주시고 1.5년동안 관리해주신 일산동물의료원 임선생님,
연두의 종양을 떼어내주시고, 식도를 살려주신 동물메디컬센터W의 최원장님,
연두를 위해 끝까지 고민해주시고, 마지막까지 살려보겠다고 말해주신 동물메디컬센터W의 김부원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연두는 무거운 종양 한조각을 지구별에 내려놓고 고양이별로 이사를 갈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나의 첫 고양이, 나의 첫 아가, 나의 첫사랑. with me from 2014.11.17 to 2023.5.15.
Every second with you for 3,102 days was pure joy, love, and happiness. I loved you, I love you, and I'm in love with you forever. Rest in Peace, D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