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연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살이 Jul 02. 2023

연두의 49재를 축하하며

연두가 고양이 별로 이사간지 49일이 지났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연두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고,  연두가 이 병을 가진 다른 친구들보다 오래 살았던 것 같아 나름 위로가 되었다. 연두가 나와 사는 게 행복해서 크게 아파하지 않고 별 이상 없이 오래오래 살았다고 생각하기로 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연두는 상피세포유래 선암이라고 했다. 수술 후 증상이 있는 경우 최소 11일, 별 증상이 없는 경우 578일을 살았던 사례가 있다고 했다. 수술 후 연두는 겨우 하루를 살았지만, 종양을 발견한 건 2021년 3월쯤이니(엑스레이 찍었을 때 뭐가 발견되었는데 그때 암 판정을 받지는 않았다), 연두는 암을 가지고 약 800일을 살다 간 거다. 그러니까, 타고난  명보다는 오래 살았다고, 그리고 그게 나랑 함께하는 게 행복해서 그랬을 거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연두, 고양이 별은 어때? 잘 지내지?

 

연두가 고양이 별로 이사 가고 매주 꽃을 선물해 주었다


나는 3주 정도 불면이라는 고난을 겪었지만 이제 잘 잔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일 하다 연두 밥 주는 시간이 지났다며 깜짝 놀라 사료통을 찾지 않고,  2-3일에 한 번씩 '어! 연두 화장실 치우는 거 까먹었어!' 하고 밤에 잠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깨지 않는다. 이제 집에 남은 연두 물건보다 집을 떠나버린 연두 물건이 더 많다. 지난번에 병원에서 가지고 온 연두 없는 연두 이동장은, 임시보호 들어간 (구) 유기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그 (구) 유기묘가 어찌어찌 제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전단지 보고 아이 찾는 분과 임시보호 하시는 분을 연결해 줬는데, 그 둘이 동일한 아이가 맞았던 것이다. 고양이 탐정도 찾지 못해 반쯤 포기했던 아이가 집에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연두가 하늘에서 지켜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연두, 하루는 이제 잘 살 거야.


간식을 가득 넣어 선물해 준 연두 이동장


연두 이름으로 된 수목장도 생겼다. 연두가 빨리 고양이별 접수하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라는 뜻으로 "고양이별 접수하고 돌아올게"라는 수목장 명패를 달아주었다. 준비가 되면 언제나 돌아와, 나는 언제나 여기 있을게. 49재 때 찾아가고 싶었는데, 현생이 바빠서 지금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연두가 반드시 돌아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연두가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잠시 "이사 갔다"라고 생각하는 게, 나는 그게 좋다. 그래야 힘이 난다. 연두가 돌아올 때쯤이면, 내 집도 장만하고, 캣타워도 여기저기 빌트인으로 해주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슬퍼할 시간이 없다. 그런 날들을 그리며, 열심히 살고 있다.  연두, 조금만 있다가 다시 와. 집사가 열심히 벌어볼게.


집구석 여포, 빨리 고양이별 접수하고 돌아와


연두가 가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제 많이 더워져서 헬스장에 가서 뛰지만, 지난주까지만 해도 해 질 녘 좋은 공기를 맞으며 달렸다. 달리기를 결심한 첫날, 치즈냥이 한 마리를 만났다. 동네 인기 고양이 인지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사진을 찍으며 귀엽다고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나를 보더니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와서 눈 맞춤을 하고 발에 부비부비 얼굴을 비볐다. 순간 너무 놀라서 "연두야?"라고 불렀더니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아... 연두는 아니었나 보다. 연두가 고양이 별에서 보내준 메신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야! 너 치즈, 우리 집사한테 가서 잘 지내라고 전해." 그래서 잘 지내고 있다. 한 달 동안 달리기를 열심히 하니 체력도 좋아지고 살도 빠져서 기분이 좋다. 메신저 보내줘서 고마워 연두.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연두 굿즈, HI, MY NAME IS YD, AND I LIVE IN HEAVEN


나는 집에서 일을 하는 데다가, 언니가 결혼한 뒤로는 가족과 우리라고 칭할 만한 것은 연두와 나 이렇게 둘 뿐이었어서, 연두의 빈자리가 정말 크게 느껴졌다. 오전 5시 반쯤 연두가 사료통 앞에서 울면 나는 일어나 밥을 줘야 했고, 오후 1시에는 츄르를, 저녁 8시에는 무릎을 내어주어야 했다. 연두의 시계는 정확해서,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원하는 게 이뤄질 때까지 울었다. 일이 많은 날이나 잠을 더 자고 싶은 날에는 연두의 요구가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후회와 그리움이 되었다. 연두가 가고 한 동안은 그런 귀찮았던 날들만 생각났다. 그때 왜 귀찮아했을까,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어. 짜증 내지 말고 해 줄걸. 이제 좀 귀찮게 했으면 좋겠다. 다행히 조금 지나고 나니까, 그래도 연두가 나랑 사는 게 행복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연두는 1년 365일 중 350일 정도는 내 무릎에 앉아 골골송을 부르며 행복한 소리를 냈으니까, 분명 행복한 날이 많았을 거다. 그렇지 연두? 잘 지내. 지내다가 또 와. 용기 있게 고양이 별로 독립한 49일째 되는 날을 축하해.


100점 만점에 100점 고양이의 10점 만점에 10점 식빵





매거진의 이전글 연두가 없어서 좋은 점 10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