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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햇살 Apr 29. 2020

엄마 말고 다른 이름을 갖고 싶었다.

다시, 나를 찾고 싶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눈부신 봄날의 28살,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직장도, 남자 친구조차도 없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나는 27살의 일기장에 30대 전에 결혼, 임신, 출산을 이루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끄적거렸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설레는 것이 아닐까.

거짓말처럼 그 해 가을에 신랑을 만나고 다음 해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초스피드 하게 30대를 보름 남짓 남겨두고 4인 가정을 완성했다.


내가 원해서 한 결혼이고, 계획된 임신이었지만 엄마가 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첫째를 키울 때 1도 아닌 0에서부터 시작한 육아는 힘들면서도 행복했다.

작디작은 아이에게 내 모든 걸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고 신기했고 존재 자체로 가슴 벅찼다.

순했던 큰 아이에 비해 연년생으로 낳은 둘째는 예민하고 등 센서가 달린 아이여서 혼자 누워있지도 않고, 거기다 분유는 거부하고 오로지 모유만 찾았다.

아빠 말고 오로지 엄마만 찾는 둘째와 혼자서 노는 시간이 많아지는 첫째 사이에서 나는 점점 사라져 갔다.

어느새 늘어진 수유티에 헝클어진 머리, 다크서클 가득한 피곤한 눈, 출산 후 탈모로 인한 삐죽삐죽 자란 잔디머리, 푸석한 얼굴을 가진 그저 육아에 찌든 여자만 남아있었다.

그것이 서른의 나였다.


친구들에 비해 일찍 결혼을 한 편이어서,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의 서른을 예쁘게 꽃 피우고 있었다.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친구

직장에서 돈을 모아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친구

바로 취업해서 돈을 꽤 많이 모아놓은 친구

여행, 공연 등 문화생활을 즐기며 자신을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친구

그런 친구들이 모두 그저 부.러.웠.다.


졸업 후, 임용고시를 공부하다가 취업했다가 또 금방 나와버리고 다시 임용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나는 사회생활의 경험이 적었다.

무엇하나 이뤄놓은 것 없었던 20대였는데 그중 가장 잘한 것이 신랑을 만난 것이었다.

이 남자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지금 놓치면 다시 못 만날 거 같아서 결혼했는데 육아를 하며 잊혔고 그냥 불쌍한 나만 보였다.

억울했다. 나의 꽃다운 시절이 이렇게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 가슴 시리게 슬펐다.

초가 타들어가듯 나도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 말고 다른 이름을 갖고 싶어."


누구의 엄마가 아닌, 누구의 아내가 아닌 오롯이 '나'를 찾고 싶었다.

내 이름 석자를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를 찾고 싶었다.

엄마라는 이름 말고 또 다른 이름, 그것을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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