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눈을 감을 수 없는 이유. 시네마가 취할 수 있는 위령제.
(스포성 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석범, 성민철, 이상희 님이 출연하고
오멸 감독이 연출한 '눈꺼풀'을 보고 왔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리더의 자질과
집단적 트라우마로까지 각인된 '세월호' 사건은
4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하나의 위령제 같은
오멸 감독의 '눈꺼풀'은 독창적인 이미지와 배열로
시네마가 어떻게 예의를 갖추며 위로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좋은 모범 답안처럼도 보입니다.
201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된 오멸 감독의 '지슬' 또한
제주 4.3 사건을 바라보는 창작자의 예의(禮儀)를
관객들은 지켜보았지요.
'지슬'또한 거대한 하나의 위령제였는데
'지슬'의 연장선상으로 보여지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제게 '눈꺼풀'은 종교영화처럼도 보입니다.
달마의 일화를 들어 눈을 감지 않으면서까지 보려고 했던것은
무엇일까 라는 내레이션이 깔리는데,
이 내레이션(혹은 영화의 주제가)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세월호 사건'을
세월이 지나서도 잊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기 위해서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공감하고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다른 시선으로도 저에게는 읽힙니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점에 놓여있는 미륵도에서
떡을 찧는 노인이 등장 한다는 점,
떡을 찧다 절구와 절구통이 망가지는 점,
그리고 염소와 뱀 벌레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쥐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는 점이
저에게는 크게 다가옵니다.
이 섬에서의 노인은 저승으로 안내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남,녀 학생과 여선생님을 위해
떡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상황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지요.
(부처의 머리로 떡을 찧는 모습 또한 그러합니다.)
쥐의 탓으로 돌릴수도 있지만,
카메라에 담겨지고 있는 자연의 풍광 앞에서는
쥐의 존재가 크게 잘못된 부분은 아닙니다.
허나, 인간의 시선에서는 쥐가 헤집고 다님으로써
도드라지고 어찌할 수 없다는 점이 하나의 무력감으로 느껴집니다.
'으이구 씨발'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사로도 비쳐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에 놓인 노인의 절망과 무력감으로도 비쳐집니다.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마지막에서 볼 수 있는데,
물 속 깊이 잠겨 얼굴형상이 나오는 모습은
불상 머리로 떡을 찧다 결국 깨지는
부처(미륵)의 형상처럼도 보입니다.
제게 달마, 노인, 쥐는 동일선상으로 비쳐집니다.
네, 이건 달마가 눈을 감을 수 없는 이유가
자신의 업보로 인한 행위처럼도 보입니다.
(업보에서 상징하는 동물이
쥐라는 점에서도 저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졸음을 쫒기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기어코 잘라냈던
달마는 무엇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의 방법론을 자연스레 인지하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상징들과 은유들의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서 보여지는 행위와 방법론이 주는 질문자체가 중요한 것이지요.
(전 오멸 감독이 이 영화로 '세월호'사건에 대한
진심과 예의 같은 것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거의 이미지들로만 이루어져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도, 알 수도 없는 이미지들이라 할지라도
그 이미지들이 주는 감정들은 구체적인 것들이지요.
이런 소재를 가지고 허다하게
소비만 했던 한국영화들을 생각하면
오멸 감독과 이 영화는 귀하게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