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문이 닫히니 다른 문이 열리더라
월요일 이른 아침, 자영씨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질질 잡아끌며 집을 나섰다. 월요일인데 조금 더 자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몸을 지배하려고 할 찰나에 정신이 주도권을 쥐고 몸뚱아리를 이끌고 나온 것이다.집에서 15분 거리, 잠시 걸어갈까를 고민했다.
“무슨 소리, 체력을 아껴야 해!”
1초 안에 답을 내고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시동을 켰다. 때는 바야흐로 6월 중순, 그놈의 지구 온난화로 온 지구가 불덩이에 휩싸였고, 대한민국은 그 현상의 중심에서 가열하게 열기를 내뿜는 중이었다. 이 계절에 도보 출근은 불가능이었다.
차로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프라자 건물 지하주차장 차단기가 열리며 '정기권 차량' 알람이 떴다. 자영 씨는 큰 고민 끝에 정기권 주차를 신청했다. 날이 좋을 때는 걷고, 차를 타야 한다면 상가 뒤편 1층 갓길에 주차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111호 쌀국숫집사장님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 종종 주차 단속 차량 떠요. 그때마다 어쩌려고? "
인테리어를 하면서 종종 1층에 주차를 하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매달 지출하는 고정 비용에서 주차비는 어떻게든 아껴보려고 했는데 그러다간 주차딱지로 범칙금을 더 낼 수도 있었다. 결국 관리소장님께 연락했고, 다달이 5만원씩 정기권 차량으로 등록했다. 앞으로 또 어떤 비용이 더 고정으로 나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정기권이 주는 안정감은 실로 컸다. 자영씨는 돈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진실을 매 순간 소스라치게 깨달았다.
지하 1층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지하 1층 엘리베이터 주변으로 상가 전단지들이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치며 질서 없이 붙어 있었다. 5층 상가는 대부분 학원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1800세대 아파트 정문 앞에 자리한 프라자 상가, 아파트는 학원 밀집 지역인 중심 상가와 다소 떨어져 있어 아이들이 도보로 다니기 어려웠다.
대형 학원들은 대부분 차량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지만, 모든 아이들이 대형 학원을 다닐 수는 없는 법. 중소형 학원을 찾는 이들을 위해 이곳 프라자 상가는 각 주요 과목 학원이 알차게 자리 잡았다.
자영씨는 동탄 2 신도시에 살고 있다. 자영씨가 동탄맘이 된 지 벌써 10년이 됐다. 동탄 2신도시는 시범 단지입주를 시작으로 동탄역, 동탄 호수 공원 주변으로 아파트가 쉴 새 없이 들어섰고, 이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신도시의 위엄을 갖춘 곳이 됐다. 입주한 지 이제 곧 10년 차를 바라보며 도시는 어느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지만, 이제 부동산으로 돈 벌 수 있는 지역은 다 채워졌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고 안목이 없는 자영씨는 지도 앱을 켜고 이 동네를 둘러볼 때마다 생각했다.
아파트 옆에 아파트, 그 옆에 또 아파트인 것이 신도시지만 블록 하나 차이로, 도로 하나 차이로 신도시 아파트 집값은 억 단위로 달라졌다.
“집값은 무조건 입지야! 숲세권이니 뭐니, 그런 건 집 팔기 위한 홍보 문구일 뿐, 집값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
그 모든 것이 결국 '입지'라는 자영씨 남편의 말에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럼에도 자영씨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상가에서는 다소 멀지만 산 아래 자리 잡았던 동탄 첫 아파트는 아이 키우기 최적이었지만 집값 곡선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프라자 상가 앞 대단지 아파트 역시 동탄에서 비싼 축에 들지 못했다. 그 이유는 중심 상가와 근접성이 떨어져서인 듯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영씨는 그 이유 덕분에 이곳 프라자 상가에 임대를 얻을 수 있었다. 고립된 상가였고,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한정적이었기에 그만큼 월세가 저렴했다.
자영씨는 자영업자다.
오롯이 스스로 선택했지만, 그것이 정말 자발적인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동탄 2신도시에 초기 입주한 사람들은 돈 좀 벌었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자영씨는 그 행운에서 비껴갔다. 동일한 원 안에 들어와 있어도 제각기 땅따먹기로 가져가는 몫은 다른 법이다.
자영씨가 동탄에서 세 번째 이사를 했을 때 자영씨는 공부방을 시작하기로 결단했다. 그동안에도 할 수 있는기회가 있었고, 주변에서 하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자영씨의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강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렁였고, 부러 방 4개짜리를 찾아 이사를 했다. 1층이나 필로티 2층을 구하고 싶었지만, 당시 그런 매물을 구할 수 없었다. 1004호, 호수도 천사였고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예감은 번번이 어긋나는 법.
이사 온 다음 날부터 아파트 현관에 쪽지가 붙었다.
“904호입니다. 쿵쿵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주의 부탁드립니다.”
쪽지는 시도 때도 없이 붙었다. 낮 1시에도 인터폰이 울렸고, 외출하고 들어와 5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렸다. 중학생과 초등 고학년 두딸이 집 안을 운동장으로 착각할리도 만무할 터. 자영씨는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날카로워졌고, 두 아이들에게 온갖 짜증과 화를 냈다. 아이들은 억울했다. 그저 걸어 다녔을 뿐인데 엄마는 계속 짜증을 내고, 아무리 조심을 해도 아래층은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었다. 그 상태에서 공부방 준비는 불가능했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완전한 패배였다.
자영씨는 화가 났고, 의기 소침해졌고, 우울했다. 하고 싶은 것을 외압에 의해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무력감이 휘몰아쳤다. 이대로 두 손 두 발 들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아래층 사람들은 자영씨가 공부방을 하려고 했다는 것조차 몰랐겠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만히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때 자영씨는 처음으로 부동산 앱을 켜고, 아파트가 아닌 상가 임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경제 개념이 전무한 자영씨에게 임대란 것은 그동안 생각의 카테고리에 없던 낱말이었다. 자영씨는 상가를 임대한다는 것이무슨 의미인 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매달 임대료를 내고 공간을 빌려서 장사를 하는 것. 정도로만 여겼다. 그것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그 이후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만큼 노력이 필요한지도 가늠할수 없었다. 당시 자영씨가 그것을 알았다면 부동산 앱을 삭제하고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뭐든 몰라서 시작하는 법이다. 그저 이 사람과 밤에 헤어지기 싫어 덜컥 결혼을 선택했던 비슷한 마음으로, 임대 계약서를 작성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단지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던 자영씨 어깨를 누군가 톡 쳤다.
"안녕하세요! 109호에 들어오신 원장님,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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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자영업자가 된 자영씨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여기 자영씨는 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