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않았다.
아들에게 보이던 감기기운은
내게 더 큰 영향을 준건지. 목과 코에 가래가 가득,
성대가 딱붙어 아 소리도 내기 힘든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이비인후과를 갔다.
의사가 깜짝놀라며 성대결절이 있는 상태에서
후두염까지 겹쳤다고.
엉덩이 주사도 맞으라한다.
아침부터 자꾸 아리엘이 생각났다.
인어공주말이다. 물고기 주제에 사람을 사랑해
다리와 목소리를 바꿨다는.
한마디도 내뜻대로 할수 없단건 지극히 두려운 일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말도 할수없음이 상대를 더 자극했을까. 아니면 사랑을 말하려다 대신 튀어나오는
무수한 오답을 말하지 않아도 된단 사실에 안심했을까
아리엘이 모쏠이 아니라면 아마 안심하지 않았을까.
좋아한다는 말은 아무리 참아도
참으려해도 꼭 나오면 안 되는 순간에 나오고만은
재채기 같은거라, 그렇게 물정을 모르는 말이라.
차라리 목소리가 없었다면 하고 바랬던 많은 과거들은
그 목소리를 들었던 누군가는 까맣게 잊고 살겠지만
나한텐 마음의 굳은살같은거니까.
산이가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연꽃을 그려달라고 했다.
메모장에 최선을 다해 그리고
서정주의 시를 보여줬다.
섭섭하지만 아주는 아니고
이별이지만 영 이별은 아니고
연꽃을 만나러 간다는 설렘과 달뜸의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이별직후의 지독한 아쉬움이 아니라
이젠조금 떨어져 지켜봐지기도 하는 그런 그리움의 바람같이.
이 뒤에 그래서 그바람 같이 무얼 하겠다는게 없는데
아마 이것이겠지
그런 바람같이 사랑하겠습니다.
생은 짧고
빅뱅이후 우주먼지에서 만들어진 모든것들에
빗대 부질없기도 찬란하기도 한 이곳에서의
이 생에
나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사랑할수 있을까
언제나 달뜨고 조급해서 내 생애 한철 핀
연꽃 만지기 바쁘진 않았던가
때때로 목소리를 잃고
연꽃이 진흙에 침잠하듯
좀 가라앉아도 좋을것 같다.
ㅡ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ㅡ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