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그거 미신이잖아.

사주를 보다, 나를 읽었다 ①

by 최아니

스무 살 초반의 어느 날.


종로를 산책하던 엄마와 나는, 파고다공원 돌담길의 천막 점집 중 하나를 골라 사주를 봤다.


엄마한테는 남편복이 없다고 했던가.

사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나의 첫 사주 체험 정도였을 뿐이다.


그때까지 사주는 나에게, 엄마의 잔소리에 곁들여지는 조미료 같은 것이었다.


“넌 사주에 화가 없어서 엄마가 옆에서 도와줘야 해.”

“네가 이래서 게으른 거야.”


내가?


잔소리에 사주까지 얹히다니. 공감도 이해도 될 리 없었다.


그러다 20대 중반 이후,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고통, 쓰디쓴 연애 같은 인생의 재난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나는 친구를 데리고 ‘유명하다’는 점집에 가서 오만 원쯤을 쓰고,


“제 인생은 왜 이럴까요.”

“남자친구는 언제쯤 생기나요.”


같은 질문들을 했다.


친구에겐 혼자 살라고 했고,

나는 쉰셋쯤에 남자복이 온다고 했다.

기가차고 황당해서 눈물 나게 웃던 스물다섯의 우리는,

2025년까지 결혼은커녕

같이 록페스티벌을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주는 정말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걸까?

이후의 내가 사주를 좋아하고 공부하며

그를 통해 어렴풋이 나를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에는 여전히 정확히 ‘NO’라고 대답하고 싶다.


사주는 미래를 알려주는 도구라기보다는,

내가 살아오고 살아갈 방식을

다른 언어로 읽게 해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