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보다, 나를 읽었다 ②
새해가 시작될 때, 회사일이 유독 힘들 때, 관계가 안 풀릴 때마다 한 번씩 내 사주를 들여다봤다.
정해진 8글자에 대한 크게 바뀔 것 없는 풀이들을
다른 역술가, 다른 어플들로 보면서도
그때그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내 기질과 성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나이를 먹고 반복된 선택들과 세월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선택은 머리와 동시에 행동이 나갔지만, 내 삶에서 대부분의 선택은 남들보다 한 발 늦게 천천히 이뤄졌다. 생각의 끝에 바닥이 보여야 ‘맞다 ‘라고 결단이 섰고,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하고 피곤했다.
그렇게 결정을 미루는 동안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난 왜 이렇게 느리고, 확신이 없는 사람일까’ 하고.
사주는 나를 작은 꽃나무라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온실 속 화초인 줄 알았다.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려는 마음 때문인지,
워낙 생각에 파묻혀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하는 성정 때문인지,
주변엔 항상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근데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도움 속에서도
늘 편하게 살지 못했을까.
고마운 사람들과는 별개로, 여러 굴곡들을 거치며 그때 다시 제대로 사주를 들여다봤다.
나는 작은 꽃나무라기보다
척박하고 뜨거운 땅에
기어이 뿌리내리는 선인장에 가까웠다.
선인장으로 자라라고
일부러 척박한 환경을 준 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단단함을 키우기 위한
힘든 ‘미션’ 같은 거였다.
“꽃인데 물도 해도 왜 없어?”
라고 원망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이제는 '아. 나는 단단해지기 위해 그 세월들을 지나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느리고, 남들의 속도와 다른 듯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있다.
너무 빨리 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인 걸 안다.
흔들려도 결국은 바로 설 거란 것도.
그게 사주가 나에게 준 희망인 건지.
삶의 경험들이 내게 준 토닥임 같은 건진 알 수 없지만
이제 한 발짝 떨어져서 내 인생과 사주를 볼 수 있게 된 지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이 기질은,
관계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