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사주로 읽다

사주를 보다, 나를 읽었다③

by 최아니

이제껏 많은 인연들이 지나갔다.

소위 금사빠였던 것도 있고, 금방 좋아하고 늦게 빠져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은 없었고,

그저 늙을 때까지 연애나 하면서 각자 오래 일하며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얼마 전 끝난 연애도 그런 생각을 갖고 시작했던 사람이었다.


나이는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었지만 그나 나나 큰 조급함은 없었고,

체력이 다한건지 이제 사람을 만나서 겪는 피로를 겪고 싶지 않았고,

이 사람이 내 연애의 끝이었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왜 끝이 났을까.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사주를 펼쳐보곤 했는데,

이번엔 좀 알고 싶었다.

나에게 관계는 어떤 것이고, 왜 이런 과정과 결말을 반복하는 건지.


연애란 나에게 ‘활력’와 ‘생기’에 가까웠다.


함께 술을 먹고 도파민을 나누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 ‘상태’를 사랑했다.


조금은 다르게 시작했던 연애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끌림이 없었고,

이전에 좋아했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 흐르는 듯한 잔잔함에 이건 사랑이 아닌가도 싶었다.


그렇게 4년을 만나는 동안

그의 루틴이, 조용한 장난스러움이, 배려가

전에 없던 안정을 느끼게 했었다.


그런데 결국 나는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에서의 존중과 성장이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사주를 들여다보며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안정은 편안함을 주었지만,

나에겐 성장과 확장이 필수였고

본인이 겪고 판단한 것들만이 정답이라고 여겼던

그가 나는 답답했다.


사랑하는데 헤어질 수 있을까?

란 질문에 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헤어지는 날까지 그를 좋아했고

아쉬운 점은 있지만 지금도 그를 탓하기보단 그냥 우리 둘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궁합이 나빴다기보다

서로를 좋아하게 만들었던 다른 성향이

끝내는 섞이지 않는 기질이기도 했다.


결국 구조가 문제였고

그건 나를 자책하기에도 그를 탓하기에도 맞지 않는

그저 각자가 가진 한계였다.


사랑했기에 만났고,

이해하려고 노력했기에 4년을 함께했다.


그래서 이별은 여전히 아프지만,

그 시간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충분했지만

구조는 맞지 않았다.


나는 관계에서 편안함만으로는 오래 머물 수 없는 사람이고,

존중과 함께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사주를 들여다보며 깨달은 건

그의 문제도, 나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

다만

나는 어떤 관계에서 살아나는 사람인지

이제는 조금 더 선명해졌다는 것.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