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집 #6
낡은 찻장에
정든 그릇 소리가 스몄다
이곳은
아마도
너를 기다리는 자리
가방에 든
매번 똑같은 책을
펼쳤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가에 놓인 장난감들은
들쭉날쭉 나를 바라보는데
그 창밖 너머로
혹시나 네가 올까
행여나
조금 더 빨리 올까
살피다가
부끄러워져서
잘 읽지도 않는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결국 책상 위에 엎드러진
나의 등을 톡톡 두드리는
네 모습은
머리가 조금 더 길었고
가을 같은 미소를 지녔고
오랜만의 만남에도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았고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했다
옛날의 나는 너에게
술에 취해 전화를 했고
이런저런 세상에 대해
아무렇게나 불평을 했고
네가 있는 그 세상이
정말 싫다고 했고
그런 나를 너는
싫지 않은 듯 받아줬고
나는 그런 너를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이젠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너의 뒷모습을 볼 때
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지
않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너의 말대로 나는
여전히 겁이 많은 인간
이었다
너와 헤어지는 지하철 역
그땐 아마도
하늘에서 비꽃이 내렸다
이젠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도 할 수 없는
그런 검은색 가방을 꼭 쥔
나의 하얀 손등 위로
성긴 비꽃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