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정체되었다고 생각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근 2년 동안 내 환경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글로움에서 독서 모임을 한지 4개월이 되어가고 있고, 그것이 내가 한 올해의 결정 중 가장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독서를 통해 상당한 자극을 받고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폭력 대화. 모순. 역행자. 겨우 4권 만에 말이다.
나는 글로움을 4년 반 동안 운영했지만, 그동안 어떠한 자극도 없었고 목표도 없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습관처럼 유지하고 인내하는 것(대체 무엇을 위한 인내인가?)인데, 글로움도 그랬다. 중간에 POD출판이다, 인스타 팔로워 수 늘리기다 뭐다하는 작은 목표들이 있었지만, 그런 작은 목표들은 이루어지고 나서 금새 수증기처럼 날아갔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의미없는 목표 달성에 싫증이 났다. 남아있는 것은 무력함과 아집 뿐이었다. 그래서 출판 모임을 계획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이끈 글로움은 절대 발전적인 모임이 아니었다. 멤버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글로움은 저번에 현일이형이 말했던 것처럼 '딱히 배울 것이 없는 모임'이 맞다. 이젠 오랫동안 모임을 지켜준 사람들이 그저 신기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들은 왜 이런 모임에 그렇게 오랜 시간 투자해 준 것일까.
10대의 나는 규칙으로 살았다. 학교 갈 시간. 학원 갈 시간. 자습할 시간과 같은 것들 말이다. 20대의 나는 직감과 막연함으로 살았다. 딱히 목표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다고 하기에는 마음 속의 모순이 너무 컸다. 나는 그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떠한 목표도 세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가치관으로 삼고 만족했다. 사실 그런 나의 20대는 꽤 행복한 삶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다. 다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조금 다르게 살 것 같다. 지금의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 내 삶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면서.
이제 30대가 된 나는 책임으로 살아갈 것 같다. 내가 벌여놓은 것들에 대한 책임 말이다. 나는 요즘 내가 20대에 뿌려놓은, 아무 공통점 없이 따로 노는 삶의 파편들을 어떻게 응집시킬지 고민중이다. 내가 지나온 삶을 대표하는 단어들 말이다. 행정학. 음악. 영상. 글로움. 게임. 여기서 어떤 것들은 챙기고 어떤 것들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에 따라서 10년 후가 달라질 것 같다. 스스로 굉장한 기로에 놓여있음을 느끼고 있다.
주변에 좋은 직장을 갖고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느낀다. 나는 남들보다 10년이 뒤쳐지는 20대를 보냈다. 그게 내가 20대에 한 선택이었고 이제 비로소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실패했고 무너졌다. 2022년 11월 회사에서 짤리면서, 내가 억지로 부정해 왔던 감정이다. 지금 나의 수준은 중소기업의 이름없는 팀원이다. 그동안 회피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안도감. 피해왔던 감정을 쏟아내고 나니 두려움보다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진다.
미안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