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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 Nov 11. 2020

중국 자가격리 호텔 상태는 어떨까?

[자가격리편 #1] 청소 요정의 등장

“찰칵”

방 키를 가져다대니 잠금장치가 열렸다. 두근두근하며 방문을 열었다. 두둥.

와, 숙소 너무 좋은데????? 한눈에 봐도 깔끔하다. 게다가 마룻바닥!!! 카펫보다 훨씬 좋다.


구비 물품부터 얼른 살펴보자.

1) 생수 550ml 24병

2) 화장실 휴지 5롤, 일반휴지 7통

3) 슬리퍼 2개

4) 수건 5장

5) 거의 다 쓴 핸드워시

6) 누가 쓰다가 만 바디워시, 샴푸

7) 칫솔+미니 치약 3세트, 빗 4통, 샤워캡/면봉 2세트 (빗을 왜 이렇게 많이 주지?)

8) 넉넉한 의료폐기물 봉투와 비닐봉지

9) 샤워가운, 충분한 옷걸이

10) 전기포트

11) 작동하지 않는 냉장고

12) 헤어드라이기


물과 수건이 많아서 다행이다! 부족한 물품

1) 비누

2) 치약

3) 욕실용 슬리퍼

정도뿐이다. 냉장고야 안 쓰면 되니까. 난 상온수 좋아한다구.


이제 와이파이를 볼까? 체크인할 때 비밀번호를 안 알려줘서 와이파이가 없나 했는데 방 번호별로 비번이 걸리지 않은 와이파이가 있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 연결은 되는데 인터넷 접속이 안 된다. 선불 유심 사 오길 천만다행이다.


전체적으로 둘러봤으니 이제 청소를 해볼까?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하기 위해 말이지(물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청소용품으로 챙겨 온 건

청소 요정 등장!

1) 세정 티슈 100매

2) 스프레이형 락스 500ml

3) 스프레이형 손소독제 500ml

4) 친환경 수세미

5) 니트릴 장갑


일단 손소독제를 전체적으로 다 뿌리고 눈에 보이는 곳부터 세정 티슈로 닦기 시작했다. 세.균.박.멸. 손잡이, 콘센트까지 하나하나 닦았다. 화장실도 락스 칠하기 전에 세정 티슈로 닦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티슈가 이렇게 까매질 일인가?

음, 그런데 닦으니까 먼지가????

이건 누구 머리카락이죠?

헤어드라이어 코드에 끼인 머리카락까지. 이거 느낌이 쎄한데? 자기 전까지 계속 청소해야 할 각인데?? 오래 걸릴 거 같아서 환기시키려고 창문 쪽으로 갔다. 다행히 창문이 열린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화장실에 환풍기가 없으니 환기를 잘해야겠다.


언뜻 보면 깨끗해 보이는 침대 옆.

닦아보니 장난 아니다. 머리카락은 기본. 머리끈, 빵까지 나온다. 빵은 침대 바로 밑에 떨어져 있었는데 청소하면서 못 본 걸까...?

전 투숙객이 여자이고, 빵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깨끗해 보이는 침대 앞.

사실은 먼지 구덩이다.

흔들리는 조명 속에서 네 머리카락이 느껴진거야

전화기 쪽은 괜찮겠지?

잡았다, 요 녀석. 누가 뭐 마셨구나.

진짜 세정 티슈 이 녀석이 청소 일등공신이다. 특진해야 할 녀석이라고!


“똑똑똑”

방에 들어온 지 1시간 반쯤 지났을까.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마스크 좀 쓸게요.”

짐을 안 풀었던 터라 급하게 캐리어에서 마스크를 찾았다.


“서류 작성한 거 주세요.”

“네? 어떤 서류요?”

“아까 로비에서 받은 거요.”

아, 그거... 청소에 심취해서 안 읽어봤는데 제출하는 거였구나. 슬쩍 꺼내봐도 중국어 천지라 양이 많다.


“죄송한데 아직 못 읽어서 조금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나 필요한데요?”

“5~10분이요.”

“알겠으니 작성하고 문 밖 의자 위에 두세요.”


청소 1등 공신을 내려두고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공부하려고 중국어 책 가져왔는데 여기 교재가 있네?

서약서랑 언제 밥 주는지, 격리 해제인지, 얼마인지 등에 관한 생활 수칙 안내문이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작성해서 문 밖에 놔두라고 되어 있던데 전혀 읽어보질 않았네. 안 그래도 고생하는 직원분을 귀찮게 한 거 같아서 신경 쓰인다. 얼른 읽고 서약서에 사인했다.

‘흠, 이렇게 중국어로만 적혀있으면 중국어 못하는 사람은 어쩌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뒷 장에 보니 영어가 적혀있다. 아하, 그럼 그렇지.

안내문에 나와있던 직원들을 위챗 친구로 추가하고 이름+방 번호+입실 일자까지 보내니 끝.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저녁 식사가 없고 방에 비치된 컵라면을 먹으면 된다고 알려주신다

현실 중국어 등장

컵라면을 살펴보니 ‘8元’이라고 적혀있다. 돈 받는 건가 보다? 1,300원 정도니 비싸진 않은데 나한테는 컵라면이 3개나 있어서 당장 필요 없다. 숙박비, 식비 합쳐서 일박에 5만 원도 안 하니 라면 하나 정도 먹어도 부담은 전혀 없다만.


2시간째 청소만 하니까 너무 배고프네? 아까 비행기에서 챙겨 온 음식을 꺼냈다. 샌드위치와 요거트가 진짜 꿀맛.

당을 공급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TV나 켜볼까?

TV 상태 양호

오오오, 영화랑 드라마가 있네? 와이파이가 안 되어도 걱정 없겠구나. 방 너무 좋은데?? 우물우물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중국 영화 아무거나 켰다. 배경음악으로 틀어둬야지~ (다음날 보니 편당 5위안(약 850원)을 내야 되는 거였다. 그래도 비상용으로 마음이 든든)


밥도 먹었으니 다시 청소해볼까? 내친김에 문 앞이다.

유심핀 득템!이 아니라 쓰레기 득템

여전하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화장실도 문 입구부터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

어머, 샴푸향이 느껴질 거 같아요

나는 세면대를 닦고 있는데 왜 이런 게 후두득 떨어질까요?

코피 아님

락스 뿌려! 뿌려! 500ml랑 750ml 중에 뭐 사 올지 고민했는데 500ml로 충분할 거 같다.

눈이 내립니다

욕실 청소하려고 욕실용 슬리퍼도 챙겨 왔는데 가져오길 잘했다. 락스가 니트릴 장갑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해서 손이 까칠까칠 쭈굴쭈글 따끔따끔한데 발까지 따가우면 더 아프니까. 락스 냄새가 진동해서 머리가 띵할 지경.

발은 안전안전
야금야금 모으니 상당한 머리카락

장장 4시간에 걸쳐 청소를 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바닥을 닦으면 먼지가 묻어난다.

손 모양이 그대로 남는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닦아도 소용없다. 100매의 용사가 조금밖에 남지 않은 상황. 못해도 60~70번은 문질렀을 거다.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2주간 내가 청소해야 하니 세정 티슈도 남겨놓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슬리퍼 신고 다니면 되니까. 한국에서도 이렇게 청소 안 했는데 중국에서 청소 요정 도비가 되어버렸네?

그래도 숙소가 1) 마룻바닥이고, 2) 환기가 된다는 점에서 맘에 든다. 청소야 내가 하면 되니까. 카펫이면 이렇게 청소도 못했을 거고. 이 정도면 충분히 상급 숙소다.

씻고, 전기장판을 깔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내일 아침으로 뭐가 나올까?’ 기대하며 자가격리 첫 날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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